“더욱 교묘한 형태로 계속되는 헤이트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 발언)에 ‘독서’라는 문화적인 행동으로 맞서고 싶습니다.”
12일 오전 9시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역 앞 광장. 일요일 이른 아침부터 책과 간이 의자를 챙겨든 사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최대 상점가를 마주 보는 광장 한쪽 벽에 일렬로 자리 잡은 시민 10명이 ‘스톱 헤이트(STOP HATE·혐오를 멈춰라)’ ‘어디에도 차별주의자의 자리는 없다’ ‘반(反)차별 가와사키 조기 독서회’라는 팻말을 세워둔 채 각자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눴다. 지난해 12월부터 1년째 주말마다 이어져 온 역 앞 독서회가 이날도 이렇게 시작됐다.
이 특이한 야외 독서회는 직장인 시민운동가인 기무라 나쓰키(木村夏樹·53)씨가 고안했다. 그는 2013년 도쿄 신오쿠보에서 ‘조선인은 죽어라’ 등을 외치는 혐한 시위를 우연히 본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반(反)헤이트스피치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기무라씨가 주도하는 이 독서회의 목적은 하나. 가와사키 최고 번화가인 이 광장에서 차별주의자들이 확성기를 들고 헤이트스피치를 할 수 없도록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극우 단체가 기습적으로 나타나 마이크를 잡고 혐오 발언을 시작하면, 한쪽에서 책을 읽던 사람들도 각자 챙겨온 확성기를 들고 즉시 달려간다. 혐오 발언이 아예 들리지 않도록 ‘인종차별주의자은 돌아가라’고 확성기에 대고 똑같이 외쳐준다.
가와사키는 일제 때 군수공장이 몰려 있어 많은 조선인이 징용된 곳이다. 독립 후 남은 동포들과 뜻을 같이한 일본인들은 1970년대부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며 적극적인 시민운동을 이어왔다. 가와사키 시의회가 2019년 12월 12일 일본 지자체 중 처음으로 헤이트스피치에 벌금을 물릴 수 있는 조례를 통과시킨 것도 이 운동의 결실이다. 하지만 조례가 생긴 뒤 가와사키는 도리어 극우 단체의 더 큰 타깃이 됐다. 교묘한 헤이트스피치에 시달리게 됐다. ‘기생충’ ‘죽어라’ 등의 직설적 표현을 배제하고, 재일교포나 외국인을 향한 중상·비방을 반복하는 시위가 올해에만 50회 가까이 열렸다고 한다.
이를 지켜보던 기무라씨는 지난해 12월 팔로어 5000명인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가와사키 역 앞 반차별 독서회’를 시작했다. 직장 생활과 병행하느라 직접 참여할 수 없는 날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지켜줬다. 그렇게 100회 넘는 독서회가 열렸다. 기무라씨는 “독서회는 헤이트스피치나 기습 시위를 막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라며 “시민의 힘이 모여 언젠가 반차별 독서회 같은 시민 활동이 필요 없어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