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에 인접한 일본 간토(關東) 지방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3일 시즈오카(靜岡)현 아타미(熱海)시의 이즈산(伊豆山) 지역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3명이 숨지고 최소 20명이 실종됐다. 4일 NHK에 따르면 전날 오전 10시 30분쯤 바위·흙더미가 섞인 토사(土砂)가 순식간에 이즈산 아래로 2㎞까지 쏟아져 내려와 주택가를 휩쓸고 지나갔다. 흙더미는 2~3차례 걸쳐 마을을 덮쳤다. 피해를 본 건물만 약 130채로 파악됐다. 사고 순간을 촬영한 영상을 분석한 다케바야시 히로시 교토대 교수는 “진흙에 가까운 토사가 시속 30㎞ 속도로 흘러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토사 규모가) 집 2층까지 닿는 등 높이가 4~5m에 이를 정도로 컸다”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20일가량 앞두고 발생한 아타미 산사태에 많은 일본인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아타미는 버블경제 시절 ‘도쿄의 안방’으로 불릴 정도로 널리 알려진 수도권 인기 온천 관광지 중 하나다. 2000년엔 김대중 대통령과 모리 요시로 총리의 정상회담이 이곳에서 개최됐다. 버블 붕괴 이후 오랜 기간 침체기를 겪었지만 최근 다시 주목받으며 상권도 부활하던 중이었다. 이런 곳에서 20명 넘는 주민이 사망·실종하자 일본 대부분의 중앙 일간지는 이를 1면 톱 기사로 보도했다.
산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기록적인 강수량이다.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사고 당일인 3일 낮 12시 반까지 48시간 동안 이 지역 강우량은 313㎜를 기록했다. 평년 7월 한 달 강우량(242.5㎜)보다 많은 비가 이틀 만에 내린 것이다. 바닷가 바로 옆에 형성된 화산재 퇴적 지형인 이즈산 일대는 경사가 급해 산사태가 발생하기 쉽다고 지적돼 왔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산사태가 실제 발생했고, 일본 정부도 2012년 이 지역을 ‘산사태 경계구역’으로 지정했다. 이런 이즈산 일대에 ’100년 만의 폭우'로 불릴 정도의 비가 내리면서 토사가 붕괴했다는 것이다.
시즈오카현의 발표에 따르면 인재(人災)의 성격도 크다. 시즈오카현은 4일 이번 토사 붕괴가 발생한 지점에서 수년 전 벌목 사업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즈산 지구 중턱에서 나무를 베어내고, 흙 5만4000㎥를 쌓아 부지를 조성했는데 이 중 5만㎥가량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산사태가 시작된 지점에서 남서쪽으로 다소 떨어진 위치엔 대규모 태양광 발전 설비가 설치된 사실도 알려졌다. 가와가쓰 헤이타 시즈오카현 지사는 “기록적인 폭우가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이지만 (개발사업과 산사태 사이의) 인과관계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근 일본에서는 이번 산사태와 같은 재해가 매년 반복돼 일본 사회가 불안해하고 있다. 본래 스스로를 자연재해 대국이라고 칭하는 일본이지만, 최근 몇 년간 장마 때마다 발생한 ‘호우 재해’는 그 피해 규모가 과거보다 커졌다. 7월 초 장마 기간 내린 폭우 때문에 2017년 규슈 북부 지역에서 40여 명이, 2018년 서일본 일대에선 280여 명이 숨졌다. 2018년 서일본호우는 ‘헤이세이(1989~2019년) 최악의 수해’라는 말도 나왔다. 2020년엔 큰비로 범람한 하천 때문에 구마모토에서만 67명이 사망했다.
특히 집중폭우로 ‘재해 약자’인 고령자들이 숨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도시에서 떨어진 시골 마을의 단독주택에 살던 고령자들이 제때 피난하지 못하고 낡은 집에 갇혀 있다가 침수로 사망하는 사례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인프라 정비를 위한 ‘국토 강인화(强靭化) 정책’에 2021~2025년 예산 15조엔을 책정해 제방 정비, 노후 교각 교체, 댐 건설 등의 대책을 발표했지만 올해도 유사한 참사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