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꾸린 새 내각에서 규제 개혁을 총괄하는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개혁 담당상이 그동안 일본에서 몇 차례 실패했던 ‘도장 없애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에서 도장이 필요한 공문서는 약 1만 건. 고노는 24일 모든 중앙 행정기관에 이런 공문서에 도장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업무상 날인(捺印)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 이유를 이번 달 내에 회신하라고 했다. 관료주의 상징으로 꼽히는 도장 문화를 없애자는 취지다. 그는 23일 디지털 개혁을 위한 각료회의에선 도장이 사라지면 행정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며 “도장을 곧바로 없애고 싶다”고도 했다.
일본의 도장 문화는 뿌리가 깊다. 관청과 회사 서류에는 담당자의 도장이 필수적이다. 일반인들이 은행 계좌를 개설할 때도 도장이 필요하다. 식당, 서점에서 손님에게 영수증을 발행해 줄 때도 도장을 찍어서 준다. 대형 문방구에는 반드시 도장을 파는 코너가 있다.
이에 대해 일본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과 유학생 등은 불편함을 호소해왔다. 일본 정부도 도장을 찍는 문화가 행정의 디지털화를 막는다며 변화를 시도했지만 바뀌지 않았다. 아사히신문의 후나바시 요이치 전 주필은 본지 인터뷰에서 “정부 회의에서 몇 차례나 도장을 없애자고 했더니 (인주를 찍지 않는) 전자 도장이 생겼다. 그런 바보 같은 일을 해왔다”고 개탄했다.
올해 코로나 사태는 일본 도장 문화의 문제점을 부각시킨 계기가 됐다. 전 세계에 재택근무가 확산됐으나 일본에선 도장을 찍기 위해 출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알려지면서 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고노는 여론의 지지가 높은 스가 정권 초반에 우선적으로 정부기관에서 도장을 몰아낸다는 계획이다.
그렇다고 도장이 쉽게 사라질지는 미지수다. 도장은 일본 사회에서 ‘일본 문화를 상징하는 가장 작은 물건’으로 인식돼 왔다. 국회엔 ‘일본의 인장 제도·문화를 지키는 의원연맹’도 존재한다. 아직도 일본에서는 “도장을 찍는 게 왜 문제냐”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를 의식한 듯 고노는 24일 트위터에 자신의 얼굴과 이름이 함께 새겨진 도장 사진을 올렸다. 여론의 반발을 의식, “행정 절차에서 도장을 없애자는 것이지 도장 문화는 좋아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