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동부 시각 13일 오전 10시부로 이란 항구를 드나드는 선박에 대한 미군의 호르무즈 해협 선별 봉쇄가 시작된다. 지난 12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미·이란 고위급 협상이 21시간 만에 결렬된 직후 내려진 조치다. 그러나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가 안정을 위해 직접 승인한 ’30일간의 이란산 원유 제재 유예’ 조치가 이란에 막대한 자금줄을 열어준 상태라, 이번 해상 봉쇄가 미국에 불리한 ‘버티기 게임’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즉시 발효로, 세계 최강인 미 해군이 호르무즈 해협에 들어오거나 나가려는 모든 선박을 봉쇄하는 절차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봉쇄 작전의 핵심은 전면전 재개 대신 이란의 원유 수출을 막아 전쟁 자금줄을 차단하고 이란을 다시 협상장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내린 정책 결정이 이번 작전에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 20일, 전쟁 발발 이후 급등하는 글로벌 유가를 억제하기 위해 해상에 대기 중이던 이란산 원유 판매를 이달 19일까지 30일간 허용하는 임시 라이선스를 발급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당시 조치로 시장에 풀려난 원유는 전 세계 수요의 약 하루 반 분량에 해당하는 1억4000만 배럴에 달한다.
하지만 미국이 열어준 이 통로를 통해 이란은 막대한 전쟁 자금을 단기간에 확보했다. 원자재 데이터 분석 업체 케이플러의 분석 결과, 이란의 3월 평균 원유 수출량은 하루 185만 배럴로 직전 3개월 대비 하루 10만 배럴 증가했다. 특히 이란은 제재 완화 기간을 틈타 자국 원유를 브렌트유보다 수달러 높은 프리미엄을 얹어 판매하는 수익까지 거뒀다. 이란 원유 수출 물량의 약 90%인 하루 170만 배럴을 구매하는 중국이 주요 판로가 됐다. 이란의 연간 국방비가 약 80억~100억달러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제재 유예로 벌어들인 원유 수익은 약 40억~50억달러로 추산돼 사실상 연간 국방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결과적으로 이란은 미국이 열어준 한 달간의 임시 통로를 통해 당장의 해상 봉쇄를 버텨낼 수 있는 현금 실탄을 비축한 상태라는 평가다. 게다가 ‘버티기 게임’이 길어질수록 미국 측 단기 부담이 더 클 수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서방의 고강도 제재를 겪어온 이란 체제는 경제적 고통이 정권 붕괴로 즉각 이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외부 압박을 빌미로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단기적인 경제 충격에 매우 민감해 장기전을 감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미 자동차협회(AAA) 집계 기준 12일 미 전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12달러로 치솟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인 2022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가 인플레이션 역시 3.3%로 반등했다. 유가 급등이 곧바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심판과 선거 여론 악화로 직결되는 미국의 정치 구조상, 압박을 가하는 쪽이 오히려 시간에 쫓기는 형국이다. 이미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이대로 가다간 11월 중간선거에서 ‘피바다’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미군의 ‘선별 봉쇄’ 작전 자체도 현실적인 군사적 난관과 위험을 수반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가장 좁은 항로 폭이 수 킬로미터에 불과하고 연안 통제권을 이란이 쥐고 있어, 완벽하고 안전한 해상 차단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평가다. 미 해군이 이란 항구를 오가는 선박을 선별해 검문하고 나포할 수는 있으나, 이란 혁명수비대(IRGC) 역시 수많은 소형 고속정과 드론, 기뢰, 해안 기반 대함미사일 등 비대칭 전력을 동원해 미 구축함을 언제든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가 장기 협상에 돌입하거나, 이미 현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에너지 혼란을 초래한 전쟁을 재개해야 하는 달갑지 않은 선택지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결국 호르무즈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경제 제재에 내성이 강한 이란 정권의 붕괴보다 유가 재급등과 물가 상승, 군사적 리스크 누적에 따른 미 국내 여론의 이탈이 먼저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유가 안정을 위해 이란의 핵심 자금줄을 한시적으로 풀어줬던 한 달 전 결정이, 유가 상승을 감수하며 이란을 다시 굴복시키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현재 상황과 충돌하며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