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이 결렬된 이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 절차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국제 유가 상승이 불가피한 조치인 만큼, 해협 봉쇄 선언의 배경에 국제 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 시각)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세계 최강의 미국 해군은 호르무즈 해협을 드나드는 모든 선박에 대해 즉시 봉쇄 절차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동 지역 미군을 총괄하는 중부사령부는 미 동부 시각 기준 13일 오전 10시(한국 시각 13일 오후 11시)부터 이란 항구를 오가는 모든 해상 교통에 대해 봉쇄 조치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와 천연가스 물동량의 20% 이상이 통과하는 핵심 해상 교통로다. 이란이 지난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해당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대해 기뢰 및 드론 공격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은 사실상 폐쇄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란의 통제 아래 일부 유조선이 제한적으로 통과하긴 했지만, 국제 유가를 비롯한 에너지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인플레이션 관리가 시급한 미국은 이란과의 협상 과정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즉각적인 개방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란이 최종 합의 이후 개방 가능 입장을 고수하면서, 미국이 돌연 해협 통제권을 직접 행사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에 나선 주된 이유는 ‘이란의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그동안 이란의 핵 합의 파기 등을 이유로 이란산 원유 판매를 제한해왔으나, 이번 전쟁 기간에는 국제 유가 급등을 우려해 제재를 일부 완화했다. 지난달에는 해상에서 대기 중이던 이란산 원유를 한 달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최대 200만 달러의 통행료를 부과하고, 자국 원유에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려왔다. 기존에는 주로 중국에 국한됐던 판매처도 일부 서방 국가로 확대됐다. CNN은 이 같은 수익이 이란 정부와 군사 작전의 주요 자금원으로 활용됐다고 전했다.
미국의 이번 조치에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해온 흐름을 차단하려는 전략적 의도도 담겨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회담 결렬 직후 SNS를 통해 올해 초 니콜라스 마두로 축출을 위해 베네수엘라를 압박할 당시 사용했던 해상 봉쇄 전략을 재차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공유하기도 했다.
영국 BBC는 “이 해협의 지리적 특성은 전쟁 기간 동안 이란이 이를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게 했고, 좁은 수로를 통과하는 선박을 선택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유가 급등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번 조치가 이란을 미국이 제시한 조건에 따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압박 수단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중국 견제 성격도 갖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그동안 이란산 원유를 비교적 저렴하게 수입해왔으며, 중국 국적의 초대형 유조선들도 호르무즈 해협을 이용해 이익을 얻어왔다. 미 해군대학원의 제임스 크라스카 교수는 미국의 해협 봉쇄가 “중국처럼 이란산 석유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이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위한 준비에 착수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 해군이 이란이 해협에 설치한 기뢰 제거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중부사령부도 전날 성명을 통해 미 해군 구축함 ‘프랭크 E. 피터슨’과 ‘마이클 머피’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아라비아만에서 작전을 수행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작전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상 기뢰를 제거하고, 해협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임무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배치된 미 해군 전력이 해상 교통 차단에 본격적으로 투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라비아해에 배치된 항공모함 링컨호는 선박 검색과 나포 작전을 위한 핵심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쟁 초기 미국은 중동 지역에 8척의 유도미사일 구축함을 배치했으며, 이들 함정 역시 해협을 빠져나가려는 유조선의 이동을 차단하거나 통제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