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연설하는 교황 레오 14세. /AFP 연합뉴스

교황 레오 14세가 10일(현지 시각)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하느님은 어떤 전쟁도 축복하지 않는다”며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과거에 칼을 들었고 오늘날에는 폭탄을 떨어뜨리는 이들의 편에 서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군사 행동은 자유나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며 “평화는 오직 공존과 대화를 끈기 있게 증진할 때만 가능하다”고 했다.

레오 14세는 같은 날 다른 글에서는 “기독교 동방의 성지에서 비인간적인 폭력이 확산하고 있다”며 “전쟁이라는 신성 모독과 이익 추구의 잔혹함 속에서 인간의 생명은 부수적 피해로 취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어린이와 가족 등 가장 약한 이들의 생명보다 가치 있는 이익은 없다”며 “어떤 명분도 무고한 피를 흘리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했다.

특정 국가나 인물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이란과 전쟁을 벌이다 위태로운 휴전 합의를 맺은 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한 메시지로 해석됐다.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이 최근 이란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종교적 수사를 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최근 “하나님은 선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우리 편에 서 있다”고 말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이번 전쟁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수행되는 전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성전”으로 표현했다.

최초의 미국인 교황인 레오 14세는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이후 전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 왔다. 최근 트럼프가 이란에 합의를 종용하며 “하나의 문명이 사라질 수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진정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교황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불편한 심기가 감지되기도 했다. 앨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최근 레오 14세의 전쟁 비판 연설 직후 주미 교황청 대사를 불러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콜비가 “교회는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아비뇽 유수’까지 언급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아비뇽 유수는 14세기 프랑스 왕정이 교황 보니파시오 8세를 굴복시키고 교황청을 로마에서 프랑스 아비뇽으로 강제 이전한 사건으로, 세속 권력이 교황의 종교적 권위를 압도한 역사적 사례로 언급된다.

바티칸 측은 교황의 이날 발언이 특정 인물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리 자체를 지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백악관 역시 트럼프와 레오 14세의 관계가 양호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