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원(왼쪽) 대만 국민당 주석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동대청(東大廳)에서 대만의 친중 성향 제1 야당 중국국민당(이하 국민당)의 정리원 주석과 회담했다. 2016년 11월 시진핑과 훙슈주 당시 국민당 주석과 베이징에서 만난 뒤 10년만에 ‘국공(國共·국민당과 공산당) 회담’이 성사된 것이다.

이번 회담은 중국이 반중 성향의 현 대만 정권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다음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을 앞둔 상황에서 성사돼 국제 사회의 시선이 집중됐다. 시진핑은 정리원을 맞아 14초 동안 악수를 나누고 본회담을 앞둔 모두발언의 대부분을 대만 독립 반대 메시지에 할애했다.

그는 “어제는 청명절이라 비가 내렸지만 오늘은 날씨가 좋다”고 말했다. 이어 “양안 동포는 모두 중국인이며, 한 가족으로서 평화·발전·교류·협력을 추구하는 것은 공동의 바람”이라며 “대만 동포들은 늘 뿌리가 본토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중화민족은 5000년 문명사를 지닌 위대한 민족으로, 대만 동포를 포함한 각 민족이 함께 조국의 광대한 영토를 개척했고 통일된 다민족 국가를 함께 세웠다”며 “국토는 나눌 수 없고, 국가는 혼란에 빠져서는 안 되며, 민족은 흩어질 수 없고, 문명은 단절될 수 없다는 공동의 신념을 함께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92공식(하나의 중국 원칙은 인정하되 표현은 각자 다르게 한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대만 독립’에 반대한다는 공동의 정치적 기초 위에서 교류와 대화를 강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정리원도 시진핑 발언에 호응했다. 그는 “대만해협은 더 이상 잠재적 충돌의 초점이 돼서는 안 되며, 외세 개입의 장기판이 돼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또 “평화는 양안이 함께 지켜야 할 도덕이자 가치”라며 “대만해협이 세계 평화를 위한 갈등 해결의 모범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92공식 견지’와 ‘대만 독립 반대’라는 공동의 정치적 기초 위에서 양안은 보다 제도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화·협력 메커니즘을 설계하고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회동은 두 사람의 성을 따 ‘시정회(習鄭會)’로 불렸다. 앞서 시진핑은 국민당 집권기였던 2015년 11월 싱가포르에서 마잉주 당시 대만 총통과 첫 양안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은 두 사람의 성을 따 시마회(習馬會)라 칭했는데 비슷한 방식으로 부른 것이다.

이날 회동은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양측이 5명씩 마주 앉아 진행됐다. 중국 측에서는 권력 서열 4위인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과 서열 5위인 차이치 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과 대만 담당 기구인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의 쑹타오 주임 등이 참석했다. 국민당 측에서는 샤오쉬천을 비롯한 부주석 3명과 국민당 싱크탱크 부이사장 리훙위안이 배석했다. 동대청은 시진핑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과 회동했던 곳으로, 2024년 4월 전직 총통 자격으로 방중한 마잉주와도 이곳에서 만났다.

비공개로 진행된 본 회담에서는 대만 현 집권 세력에 대한 국민당의 견제 전략 등이 중점 논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대만 언론들은 전했다. 특히 라이칭더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 정권이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해 미국 무기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국민당의 역할, 2028년 1월로 예정된 차기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의 집권 전략 등이 논의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당은 마잉주 총통(2008~2016)을 끝으로 총통 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하면서 10년째 야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국공회담을 계기로 지난 10월 국민당 주석에 오른 정리원의 존재감과 역할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난 7일부터 6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 중인 정리원은 대만 독립을 추구하고 미국·일본과 밀착해온 라이칭더와 대립각을 세우고 중국에 우호 메시지를 보내는 방향으로 동선을 짰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중국과 대만이 모두 국부로 추앙하는 쑨원의 묘소인 장쑤성 난징의 중산릉 참배, 상하이 양산항 방문, 대만 기업인 면담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양안 경제협력의 상징적 장소로 꼽히는 양산항에서는 오랫동안 중국 본토 시장을 개척해온 대만 기업인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며 “2028년 국민당이 정권을 잡으면 이를 풀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앞서 8일 중산릉 연설에서는 일본을 11차례 언급하며 일본 식민 지배와 제국주의를 비판했다.

집권 민진당 측에서는 정리원의 방중이 중국의 대만 영향력 확대 전략에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라이칭더는 지난 8일 미국 의원단을 만난 자리에서 “진정한 평화는 권위주의에 굴복하거나 타협해 얻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 정리원을 우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