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수를 하루 약 12척으로 제한하고 통행료를 부과하겠다고 이란ㆍ미국 간 휴전 중재국들에 통보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8일 보도했다.

이란 측은 해협을 통과를 원하는 선박은 이슬람혁명수비대와 사전에 통행료를 협의하고, 암호화폐나 중국 위안화로 통행료를 내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아랍 중재자들은 전했다. 이란은 미국과 유럽의 제재로 인해 전세계 주요 금융망에서 사실상 차단됐다.

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 7일 해협 통과가 허용된 선박은 4척으로, 4월 들어 가장 적었다. 전쟁 이전에는 하루 100척 이상이 통과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국제 해협이기 때문에, 유엔 해양법협약(UNCLOS)에 따라 모든 국가 선박이 공해처럼 자유롭게 통과할 권리(통과 통항권)가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있기 전인 불과 6주 전만 해도 선박들은 어떠한 군사적 협의 없이 자유롭게 해협을 통과했다.

수에즈ㆍ파나마 운하와 달리, 국제 해양법은 호르무즈 해협ㆍ영국해협ㆍ지브롤터 해협ㆍ말라카 해협과 같은 ‘자연 해협’을 통과하는 데 대해 특정국이 통행료를 부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란은 이번 전쟁 중에 자국 허가 없이 통과하려는 일부 유조선을 공격해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했고, 앞으로 2주간 휴전 협상 기간에 이를 굳히려 한다.

8일 오전 이란은 해상 무선(VHF)을 통해 이슬람혁명수비대 해군의 허가 없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는 선박은 파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8일 테헤란의 혁명 광장에 걸린,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폐쇄 상태”라고 적힌 대형 광고판./AFP 연합뉴스

그러나 원유 수출의 대부분을 이 해협에 의존하는 걸프 지역 산유국들과 유럽·아시아의 에너지 소비국들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해 상시적으로 통제권을 갖게 되는 상황을 크게 우려한다. 휴전 중재자들은 이란 측의 이러한 요구가 앞으로 휴전 협상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이란은 이미 최근 몇 주 동안 ▲이란산 석유·물자를 운반하는 선박은 무료 통과 ▲우호국 선박은 일부 비용 지불 ▲미국·이스라엘과 연계된 국가들의 선박은 통과 금지라는 차등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통행료는 약 1주일 전에 결정되며 선박 규모에 따라 다르다. 약 200만 배럴을 적재하는 초대형 유조선은 최대 200만 달러까지 통행료를 내야 한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은 “이란 의회는 통행 승인과 수수료를 포함한 새로운 해협 관리 계획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이란이 선박들의 호르무즈 해협 통행을 통제하는 케슘 섬과 라라크 섬 위치. /유럽우주국(ESA) 위성 사진

해협 통과가 허용된 선박들은 기존 항로가 아니라, 해협의 북쪽에 있는 이란의 케슘 섬과 라라크 섬 사이 통로를 지나 이란 해안을 옆으로 끼고 항해한다.

이란의 해협 통행료 강제 부과에 대한 미국 측 입장은 불분명하다.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이 휴전 기간에 해협 통행이 이란 군의 감독 하에 있을 것이라고 소셜미디어에 밝히자,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이를 재공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8일 ABC 뉴스에 “통행료 징수를 이란과의 합작 사업으로 진행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전쟁이 끝난 후 가장 큰 과제는 이란이 통행료를 부과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며, 이를 불법적이고 위험한 행위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그는 “이란의 통행료 부과 움직임에 대한 대응의 주체는 에너지 공급을 이 해협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이 돼야 한다. 미국이 주도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저널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의 통행료 요구를 사실상 인정한 것은, 하루 약 2000만 배럴(세계 공급의 약 20%)에 달하는 원유 흐름의 상당 부분을 이란이 장악하는 결과를 고착화할 위험이 있다”고 보도했다.

석유 분석업체 스파르타의 닐 크로스비는 저널에 “현재처럼 선박별로 협상이 이뤄지다 보니, 사실상 원유 흐름이 거의 없는 상태와 같다”고 말했다.

이란은 통행료를 호르무즈 해협의 반대편에 위치한 오만과 분배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오만은 동의하지 않았다. 걸프(페르시아만) 아랍국가들은 통행료 부과가 유엔 해양법협약 등 국제조약이 보장하는 항행의 자유를 위반한다고 반발한다.

스웨덴 은행 SEB의 신흥시장 수석전략가인 에릭 마이어슨은 저널에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통제는 “모두가 예측했고, 실제로 전쟁 개시 전에 계속 경고됐던 경제적 재앙이지만, 트럼프는 그럼에도 전쟁을 개시했다”며 “거의 완전한 제공권(制空權)을 보유한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완전히 무력(無力)하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