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충돌 직전에서 휴전에 합의한 미국과 이란은 10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후속 협상을 벌이게 된다. 카타르·오만 등 중재 경험이 풍부한 아랍 국가들을 제치고 파키스탄이 휴전 협상을 맡게 된 것은 지정학적 위치와 셰바즈 샤리프(75) 총리의 역량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셰바즈 샤리프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휴전 방침을 밝히면서 서두에 “샤리프 총리와 아심 무니르 육군참모총장과의 대화 및 그들의 요청을 바탕으로 한 조치”라고 했다. 트럼프는 이어 이란의 대외사령탑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의 공식 입장도 공유했다. 아라그치 역시 샤리프와 무니르를 ‘친애하는 나의 형제들’로 부르며 “이란을 대표해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했다.

파키스탄은 이란과 약 900㎞의 국경을 맞대고 있고 2024년에는 접경지역 분리주의 세력 소탕을 명분으로 이란이 미사일·드론을 발사하자 파키스탄이 보복하며 무력 충돌도 벌였다. 트럼프는 1기 때였던 2018년 이슬람 테러 조직 격퇴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키스탄에 대한 군사 원조를 끊으며 충돌했다. 그럼에도 파키스탄은 오랫동안 어느 한쪽과 완전히 척을 지지도, 밀착하지도 않는 등거리 노선을 유지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오만·카타르가 이란의 공격을 받으며 사실상 원수지간으로 돌변한 뒤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파키스탄은 한때 서방에서 적성국에 가깝게 인식됐다. 1998년 남아시아의 앙숙 인도와 경쟁적으로 핵실험을 벌이며 비공식 핵보유국이 됐다. 자국의 핵 기술을 이란·북한·리비아에 넘긴 사실이 알려지며 국제 사회 제재를 받았다. 임기를 온전히 마친 총리가 한 명도 없을 정도로 불안한 나라,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의 은신처라는 부정적 인식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중재국 지위를 얻는 데는 샤리프 총리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다. 샤리프는 총리를 세 번 지낸 나와즈 샤리프(77) 전 총리 동생으로,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펀자브 주총리를 세 차례 거친 뒤 2022년 총리에 올랐고, 노련한 관리형 지도자라는 평가 속에 군부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파키스탄 경제에 직격탄이 이어지자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고 알려졌다. 이번 중재에서 샤리프는 트럼프,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통화를 이어갔고, 무니르는 J D 밴스 부통령, 스티브 윗코프 특사, 아라그치와 밤새 연락을 주고받는 ‘투 트랙 전략’을 폈다.

파키스탄의 최근 정치 상황도 미국 신뢰를 얻는 데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전임 임란 칸(74) 전 총리는 중국·러시아와 강력하게 밀착하며 야권 및 군부와 갈등했고, 2022년 4월 의회의 불신임으로 축출됐다. 후임 샤리프는 지난해 영토 분쟁 지역 카슈미르에서 벌어진 인도와의 무력 충돌 사태가 미국 중재로 진정되자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할 정도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였다.

이란이 휴전에 응한 데는 오랫동안 밀착해 온 중국이 “유연성을 보이라”며 이란 집권 세력을 압박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뉴욕타임스가 8일 보도했다.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주요 수입국으로, 중동 정세 불안 장기화 시 미칠 충격을 우려해 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