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미국과 이란의 2주 휴전 합의를 수용해 대(對)이란 공격을 멈췄지만, 친(親)이란 무장 세력인 헤즈볼라가 있는 레바논은 합의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대대적인 공습에 나섰다. 수백 명 사상자가 발생하며 전황이 악화하자 주레바논 한국 대사관은 9일 현지 교민에게 “더 늦기 전에 출국을 고려해 달라”고 했다. 레바논에는 우리 교민 90여 명이 체류하고 있다.
전규석 주레바논대사는 이날 교민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이 글을 드리는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반드시 전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며 “금일 베이루트 도심과 자흘레를 포함한 레바논 전역에 이스라엘의 공습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그 범위와 강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전 대사는 “아울러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가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를 벗어나 베이루트 북부 및 종파가 혼재된 지역으로 재배치되고 있다고 발표하고, 이 지역에 대해서도 다히예와 유사한 수준의 군사적 타격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며 “이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교민들이 체류하는 지역마저도 더 이상 안전지대로 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전 대사는 “여러분의 안전이 가장 우선”이라며 “지금은 ‘조금은 더 지켜보자’는 선택이 점점 더 위험해지는 시점”이라고 했다. 이어 “민항편을 통한 출국이 가장 현실적이고 안전한 수단이지만 이런 이동 경로도 언제든 제한될 수 있고, 그 시점은 사전에 예고되지 않을 수 있다”며 “대사관은 가능한 모든 지원을 다 할 것이지만 상황이 악화될 경우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여건 자체가 제한될 수 있다는 점도 솔직히 말씀드린다”고 했다.
전 대사는 “결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생업, 가족, 삶의 터전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로서는 헤아려 짐작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언제까지 안전하게 떠날 수 있는가’를 판단해야 할 시점”이라며 “부디 더 늦기 전에 출국을 진지하게 고려해 주시길, 그리고 가능한 한 조속히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했다.
주레바논대사관은 이날 공지사항을 통해 레바논 내 전쟁 상황 등 엄중한 정세를 고려해 영사민원실 운영을 일시 중단한다고 안내했다. 대사관은 “다만 재외국민 보호와 관련된 긴급하고 필수적인 영사 업무는 제한적으로 지속해 운영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미·이란 2주 휴전 발표 날… 이스라엘, 레바논 대규모 공습
레바논은 자국 내 친이란 무장세력 헤즈볼라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이 벌이는 전쟁에 지난달 2일 가세하면서 포화에 휩싸였다. 미국과 이란은 전날 2주간 휴전을 선언했으나, 레바논이 휴전 대상인지를 두고는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군은 휴전이 발표된 8일 베이루트를 포함한 레바논에 대대적인 집중 공격을 가했다. BBC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베이루트를 비롯한 레바논 전역에 걸쳐 단 10분 만에 100회 이상 공습을 가했다고 밝혔다. CNN은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의 레바논에 대한 최대 규모 공습”이라고 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현재까지 최소 182명이 숨지고 89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무너진 건물 잔해에 매몰된 이들이 많아 사상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이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를 겨냥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레바논 총리는 비무장 민간인을 공격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에는 완수해야 할 목표가 더 많이 남아 있다”면서 “휴전 합의에 헤즈볼라는 포함되지 않는다. 계속 그들을 때릴 것”이라고 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공격이 ‘휴전 합의 위반’이라고 반발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은) 휴전 합의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