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이스트윙(동관)을 철거하고 초대형 연회장을 건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증축 계획에 미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국가 자산인 백악관을 회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변형하는 대규모 공사는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비록 1심 법원의 판결이지만, 연회장 증축은 트럼프 집권 2기의 역점 사업인 만큼 국정 동력에 적잖은 타격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월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대표 정책인 상호 관세에 대해 위법 판결을 내린 데 이어 이번 결정이 나오면서,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가 폭주하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나선 모양새가 됐다. 핵심 의제가 연달아 가로막히자 트럼프는 1일 연방대법원의 출생시민권 제한 행정명령 관련 변론에 직접 참석했다. 이 행정명령마저 위법 판결을 받을 경우에 대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은 백악관 관리자일 뿐”
워싱턴 DC 연방법원 리처드 리언 판사는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트럼프 행정부가 진행 중인 연회장 건설과 관련, 공사 중지를 요구한 본안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추가 공사를 중단하라는 예비적 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번 소송은 비영리단체인 국가역사보존협회가 “백악관 증축은 의회 승인을 받지 않은 불법 건축”이라며 제기한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10월 백악관에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9만 제곱피트(약 2530평) 크기의 연회장을 짓겠다며 대통령 배우자 집무실이 있는 이스트윙을 철거했다. 기초 공사가 이미 진행된 데 이어 이달부터는 지상 구조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리언 판사는 35쪽 분량의 판결문에서 느낌표를 19번 사용하며 연회장 증축의 위법성을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 없이 연회장을 건설할 법적 권한이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대해 “그런 권한을 갖고 있다고 볼 만한 어떤 법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협회가 본안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 따라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다”며 “의회가 완공을 승인할 때까지 연회장 건설 프로젝트는 중단돼야 한다”고 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임명한 리언 판사는 “대통령은 미래의 대통령과 그 가족을 위해 백악관을 관리하는 책임자이지 소유자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24개 기업 및 개인 후원자로부터 3억5000만달러(약 5300억원)를 모금해 건설 자금으로 쓴다는 계획 역시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백악관은 “지독하게 부당한 판결”이라며 즉각 항소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 위기감 확산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는 위기감이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는 판결 다음날인 1일 연방대법원에서 열리는 출생시민권 제한 관련 변론에 직접 참석했다. 출생시민권은 부모의 국적과 상관없이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미국 국적을 부여하는 제도다.
트럼프는 지난해 1월 취임 첫날 불법 체류자 자녀에게는 이 제도가 적용되지 않도록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이후 헌법에 보장된 출생시민권을 행정명령으로 제한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2심은 이 행정명령이 위법하다고 판단했고 현재 대법원까지 올라온 상황이다. 연방대법원은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출생시민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트럼프 입장에는 다수가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는 상호 관세와 백악관 증축에 이어 출생시민권 행정명령까지 법원에서 가로막히면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직접 변론에 참석한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는 대법원 변론을 직접 참관한 최초의 현직 대통령이 됐다”고 했다. 트럼프가 참석하면서 대법관들에게 압박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법원은 최근 트럼프 정부의 정책에 연이어 제동을 걸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지난 2월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 승인 없이 주요 교역국에 부과한 상호 관세는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같은 달 매사추세츠주 연방법원도 불법 이민자를 출신 국가가 아닌 제3국으로 즉각 추방하는 정책은 위법이라고 했다.
지난달에는 워싱턴 DC 연방법원이 의회에서 위증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에 대한 검찰의 대배심 소환장을 무효화했다. 파월이 수사 대상이 되자 트럼프가 기준금리를 내리라는 자신의 요구를 거부한 파월을 찍어내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