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UAE(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두바이 월드컵' 경마 대회에서 기수들이 트랙을 내달리고 있다. 맨 오른쪽의 경주마 매그니튜드와 기수 호세 오르티스가 메인 이벤트 경주에서 우승했다. 이란 전쟁으로 중동에서 예정됐던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가 줄줄이 취소됐지만, 이날 대회는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 UAE 총리의 지원 하에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AP 연합뉴스

“미사일과 드론이 날아다니는 초현실적 상황에서도 ‘쇼’는 계속된다.”(미 경마 사이트 트윈스파이어스)

‘일촉즉발’의 전장(戰場)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맞닿은 UAE(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지난 28일 총상금 3050만달러(약 462억원)가 걸린 세계적인 경마 대회 ‘두바이 월드컵’이 열렸다. 6만명을 수용하는 두바이 메이단 경마장은 한껏 멋을 낸 관중들로 북적였고, 야외 사교장에선 대규모 패션쇼가 진행됐다. 경주마가 질주하는 트랙이 내려다보이는 VIP 라운지에는 최고급 요리가 테이블을 채웠고, 황금색 의상을 입은 연주자들이 흥을 돋웠다. 시시각각 변하는 중동의 전황(戰況)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메이단 경마장은 전쟁이 뭔지 모르는 별나라처럼 평화롭고 또 호사로웠다. 실제로 이날 UAE군은 자국 영공으로 날아온 이란의 미사일 20기와 드론 37기를 격추시켰다.

그래픽=이철원

◇미사일 공습 상황에서 열린 경마 대회

2월 말 이란 전쟁 발발로 중동에 긴장감이 고조되자 중동 일대에서 예정된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가 줄줄이 취소됐다. 지난 27일 카타르에서 열기로 한 유럽과 남미의 축구선수권 우승팀 간 대결 ‘피날리시마’가 취소됐고, 4월 10일 바레인, 17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예정된 F1(포뮬러원) 그랑프리도 없던 일이 됐다.

UAE도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으로 두바이 국제공항을 포함해 자국 내 미군 기지, 원유 저장 시설과 공장 등 주요 인프라가 파괴되고 인명 피해까지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두바이 월드컵은 예정된 9차례 레이스를 모두 치렀다. 전쟁 발발 후 UAE에서 열린 첫 대형 야외 스포츠 이벤트였다. 메인 경주에선 미국산(産) 경주마 ‘매그니튜드’가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일본 ‘포에버 영’을 제치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상금 700만달러(약 106억원)의 주인공이 됐다. 미국 경마 매체 트윈스파이어스는 “이번 대회의 가장 큰 얘깃거리는 대회가 열리게 됐다는 사실 그 자체”라고 했다.

UAE는 왜 두바이 월드컵 개최를 강행했을까.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이 대회가 올해 치러지는 세계 경마 일정의 핵심이어서 취소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두바이 월드컵 우승자는 미국에서 열리는 최고 권위의 ‘브리더스컵’ 출전권을 거머쥔다. 또 F1처럼 세계 각지에서 열린 대회 성적으로 경마를 온라인 게임처럼 즐기는 ‘CJR(크라운 주얼스 레이스)’에서도 두바이 월드컵은 빼놓을 수 없는 무대다.

두바이 월드컵 현장을 찾은 알 막툼 UAE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한껏 멋을 낸 방문객이 경마 트랙을 내려다보며 술과 음식을 즐기는 모습. /AP 연합뉴스

◇두바이 실권자의 남다른 경마 사랑

하지만 두바이 월드컵 경마가 열린 진짜 이유는 두바이의 실권자로 20년째 UAE 부통령 겸 총리를 맡고 있는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77)의 개인적인 의지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FIFA(국제축구연맹)와 FIA(국제자동차연맹) 같은 국제 스포츠 기구는 중동 상황의 심각성 때문에 예정된 대회를 즉각 취소했지만, 두바이 월드컵은 주최자가 두바이를 통치하는 알 막툼 총리다. 그가 각별하게 애정을 쏟아붓는 대회로 올해 30주년을 맞은 두바이 월드컵을 전쟁 때문에 취소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명마를 수집하는 경마 애호가이자 마주(馬主)로 활동하는 그는 1996년 국제사회에서 UAE와 두바이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거액을 들여 두바이 월드컵을 창설했다. 창설 당시 총상금(400만달러) 규모는 당시 세계 최대였고, 지금은 그 규모가 7배 이상으로 커졌다.

알 막툼 총리의 개인 의지와 함께 “전쟁 속에서도 UAE는 안전하다”는 선전 도구로 두바이 월드컵을 활용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날 레이스 현장을 찾은 알 막툼 총리는 “이번 월드컵은 UAE가 주요 글로벌 이벤트를 개최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한 사례”라고 자평했다. 대회를 운영하는 두바이 경마클럽 관계자는 “단결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에 전 세계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스포츠의 힘을 보여줬다”고 했다.

두바이 월드컵에 걸려 있는 거액의 스폰서 계약도 섣불리 대회를 취소할 수 없게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론진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와 주메이라그룹 등 UAE 대기업의 후원으로 대회를 준비했는데, 대회 취소로 발생하는 손실을 꺼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