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대표적 축일인 부활절(5일)을 앞두고 예루살렘 성묘(聖墓·예수 그리스도의 무덤) 교회에서 가톨릭 사제들이 미사를 진행하려다 ‘전쟁 중 안전’을 내세운 이스라엘 당국의 제지에 가로막혔다. 주요 기독교권 국가에서 일제히 반발하면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의 불똥이 서방 내 갈등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30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전날 가톨릭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청 소속 피에르바티스타 피차발라 추기경과 프란체스코 이엘포 신부가 종려주일 미사를 집전하고자 성묘 교회에 들어가려 했으나 경찰에 제지됐다. 종려주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해 십자가 고난을 당하고 부활에 이르는 과정을 기념하는 ‘고난 주간’의 시작점이다. 가톨릭 순례자들은 이 시기 성묘 교회 인근에서 종려나무 잎을 흔들면서 행진하는 전통이 있다. 총대주교청은 이란 전쟁 발발 후 안전 문제를 고려해 행진을 취소하고 미사 참석 규모도 50명 미만으로 줄였지만, 미사를 진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미사일 위협 등 안전 문제를 감안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했다. 하지만 미사 금지는 과거 중동 정세가 불안했을 때도 취해지지 않은 조치여서 기독교계와 주요 국가들의 반발을 불렀다. 라틴 총대주교청과 성지 관리단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전 세계 수십억 명의 감정을 무시한 처사”라고 했다.
바티칸과 밀접한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가톨릭 신자는 물론이고 종교 자유를 인정하는 모든 공동체에 대한 범죄 행위”라고 했고,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자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초치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예루살렘 성지의 현상 유지를 침해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개신교 목사이기도 한 마이클 허커비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는 “추기경의 출입이 막힌 것은 유감스러운 월권 행위”라고 했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의 공동 성지인 예루살렘은 중세 십자군 전쟁 이후 세 종교 세력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란 전쟁으로 이러한 ‘공존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감이 반영된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파문이 확산하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사건을 보고받은 즉시 추기경이 미사를 집전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했다.
성묘 교회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매장, 부활의 현장으로 여겨지는 기독교 핵심 성지이자 예루살렘의 최대 기독교 거점이다.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콘스탄티누스 1세가 335년 이곳에 교회를 세웠다. 11세기 이슬람 파티마 왕조가 파괴한 이후 재건됐고, 19세기 대화재 이후에도 다시 세웠다. 이런 예외적 사건을 제외하면 미사는 십자군 전쟁 때도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콥트 정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등 기독교 여섯 종파의 공동 성지이기도 하다. 이들이 모두 성지의 소유권을 주장하자, 19세기 예루살렘을 다스렸던 오스만 제국은 성당의 여러 부분을 각 종파에 배분했다. 이후 현재까지 ‘현상 유지(Status Quo)’ 원칙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 건물 외벽에 있는 사다리도 각 종파가 철거에 합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300년 가까이 그대로 둘 정도다.
최근 이란 탄도미사일 파편이 성지가 밀집한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떨어지자 이스라엘 당국은 “예배자들을 보호하겠다”며 유대교 성지 ‘통곡의 벽’과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 모스크’를 폐쇄했다. 무슬림은 “가톨릭과 유대교에 비해 이슬람 의례를 편파적으로 통제한다”고 주장한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이슬람권에선 이스라엘이 안전을 구실로 알아크사 모스크가 있는 성전산을 장악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종말론적 세계관을 가진 일부 유대인은 과거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이 자리에 들어선 모스크를 철거하고 성전을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묘교회
이스라엘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있는 교회.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골고다 언덕과 무덤이 함께 있는 기독교의 핵심 성지다. 4세기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 자리에 처음 교회를 세운 뒤 파괴와 재건을 거듭하면서도 미사와 순례가 이어졌다. 가톨릭을 비롯한 기독교 여섯 교파가 나눠 관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