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그 이면에서 러시아가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챙기고 있다.
러시아는 올해 초만 하더라도 우크라이나 침공 4년 차에 접어들면서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전쟁 비용 때문에 자국에 경제 위기가 터질 조짐이 보였다. 푸틴 행정부가 한때 우크라이나 군사 작전을 축소할지 여부를 고민할 정도였다.
그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타격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미국은 자국 내 물가 상승을 억제하고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12일부터 러시아 석유 제재를 일시적으로 유예했다. 이후 말라 붙었던 러시아 국고에 다시 막대한 오일머니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제재가 느슨해진 빈틈을 타 원유 수출 물량을 한계치까지 밀어내고 있다. 선박 추적 데이터와 항만 대리점 보고서를 종합하면 러시아 국적 유조선들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미국 관세 유예 조치를 전면적으로 활용해 원유를 가득 채우고 있다. 18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달 15일 기준 최근 4주 동안 러시아 해상 원유 수출량은 하루 평균 344만 배럴을 기록했다. 3월 둘째 주에는 하루 수출량이 397만 배럴까지 뛰어 1년여 만에 최대치를 경신했다.
러시아는 북극과 태평양 항구를 거쳐 쏟아낸 원유 대부분을 인도와 중국 같은 아시아 국가를 상대로 팔고 있다. 이달 아시아 국가 수출량은 하루 317만 배럴까지 늘어났다. 모스크바는 제재 유예 기간을 철저히 활용하기 위해 카자흐스탄 원유를 섞어 추가 수출 물량을 창출하는 등 수익 극대화에 매달리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석유와 가스는 국제 제재 속에서도 러시아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기둥이다. 러시아 재무부는 올해 예산 편성 단계에서 수출 주력 상품인 우랄산 원유 기준가를 배럴당 59달러로 낮게 잡았다. 실제 국제 사회 제재가 더 촘촘해지면서 1월과 2월 두 달 동안 러시아가 석유와 가스 부문에서 거둔 수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 급감한 102억 달러에 그쳤다.
그러나 이란 전쟁이 유가를 밀어 올리면서 인도로 배달되는 러시아산 핵심 유종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 분석을 인용해 러시아가 중동 전쟁 발발 후 단 2주 만에 100억 달러(약 15조 원)를 벌어 들였다고 주장했다. 미국 CBS는 유럽 러시아 에너지 제재 분석가 루크 위켄든을 인용해 “석유 수익 증가가 러시아에 새 생명줄이 되고 있다”며 “유가 폭등으로 서방이 친 제재망이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우방국인 이란을 상대로 철저히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이스라엘 공습 첫날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사망하자 “모든 인간 도덕과 국제법 규범을 위반한 냉소적 살인”이라며 미국을 강하게 규탄했다. 동맹국 이란을 감싸며 반미 연대를 부각하려는 외교적 수사다.
하지만 동시에 원유 시장에서는 지정학적 위기를 틈타 자국 에너지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 위한 판촉 행위를 벌였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공습 첫날 기자 브리핑에서 “러시아 에너지 제품 수요가 증가했다”고 강조하며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 모두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이를 두고 “동맹국 수장 죽음 앞에서도 위기를 돈으로 바꾸는 모스크바식 실용주의를 여과 없이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이란 위기는 러시아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차원에서 오랫동안 꾀했던 외교 전략에도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중동 국가들이 호르무즈 해협 위기로 수출 차질을 빚는 동안 러시아는 아시아 시장 내 입지를 단단히 굳히고 있다. 중동발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해지면 중국과 인도 같은 아시아 거대 수입국들은 러시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 의존도를 높일 수 밖에 없다. 러시아로선 단기적인 수익 창출을 넘어 아시아 에너지 패권까지 거머쥘 기회다.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맷은 에너지 컨설팅 업체 스트라타스 어드바이저스를 인용해 “아시아 주요 수입국에 이란 위기는 즉각적인 위협이지만, 러시아에는 핵심 탄화수소 공급국으로서 장기적인 역할을 선점할 기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