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대법원 닐 고서치 대법관. /AP 연합뉴스

“그렇습니다. 입법은 힘들 수 있고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그렇게 설계한 핵심 목적이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심 정책인 글로벌 관세를 멈춰 세운 연방 대법원 판결에서 닐 고서치(59) 대법관의 의견이 워싱턴 정가와 미 사법부에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고서치는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 등을 거쳤고, 2006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임명했다. 이어 2017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 대법원 보수세력의 거두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 후임으로 임명한 보수파 대법관이다. 그런 그가 오히려 트럼프의 상호 관세를 위법하다고 판단하며 입법부인 의회 기능을 강조하자,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사실상 마비 상태였던 다수당인 공화당 등 의회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서치는 상호 관세가 위법하다는 다수 의견에 대한 보충 의견에서 “국가가 더 많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오늘의 결정이 실망스러울 것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서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미국 국민의 권리와 책임에 영향을 미치는 대부분의 주요 결정은 입법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긴급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의회를 우회하고 싶은 유혹이 생길 수 있다”면서 “심의를 하는 입법 과정을 통해 국가는 단지 한 파벌이나 한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의 결합된 지혜를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 대법원. /로이터 연합뉴스

현재 미 의회는 상원과 하원 모두 공화당이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다. 입법·사법·행정부 모두 보수파가 우위를 점하며 공화당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사실상 의회를 우회하는 행정명령을 통해 국가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려왔고, 공화당 내에서는 견제의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트럼프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당일 기자회견에서 관세 부과를 위해 의회와 협력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럴 필요 없고 나는 관세를 부과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고서치는 “입법 과정은 어떤 이들에게는 장점이 분명하게 느껴질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명백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면서 “역사가 길잡이가 되어준다면 전세는 역전될 것이고 오늘의 결과에 실망한 사람들도 입법 과정을 ‘자유의 보루’로서 높이 평가할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기자회견에서 닐 고서치 대법관 등 자신의 관세를 막은 대법관들을 비판했따. /EPA 연합뉴스

의회에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나왔다. 네브래스카주(州) 하원의원 돈 베이컨(공화당)은 CNN에 “이 판결로 권한이 분명하게 다시 의회에 돌아왔다”면서 “우리는 스스로 일어서서 이러한 권한을 행사해야 하며 그것이 건국의 아버지들이 의도한 바”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고서치는 입법권에 대한 헌사를 통해 무력화된 의회에 대한 미묘한 질책을 했다”고 전했다. 반면 고서치를 대법관으로 임명했던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가족들에게조차 수치스러울 것”이라며 그를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