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자산가들이 늘어나면서 국내에서도 ‘패밀리 오피스(FO)’ 수요가 높아지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중과세 문제로 패밀리 오피스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패밀리 오피스 수요는 홍콩과 같은 아시아 금융 허브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13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5 한국 부자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기준 100억~300억원을 보유한 고액 자산가는 3만2000명, 300억원 이상 초고액 자산가는 1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자산가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3066조원으로, 한국 정부 예산(677조원)의 4.5배에 달한다.

◇韓 패밀리 오피스 수요 높지만, 이중과세 ‘장벽’

고액 자산가들의 자산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이를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패밀리 오피스에 대한 수요도 함께 늘고 있다. 패밀리 오피스는 운영 방식에 따라 개인이 신탁, 헤지펀드 등의 형태로 자금을 직접 운용하는 싱글 패밀리 오피스(SFO)와, 증권사·보험사 등이 여러 자산가의 자금을 묶어 관리하는 멀티 패밀리 오피스(FMO)로 나뉜다.

세금 및 자산 관련 그래픽

한국에서는 봉제인형 회사로 출발해 케이블 방송사 씨앤앰을 키운 이민주 회장이 2008년 씨앤앰을 매각한 뒤, 약 1조5000억원의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한 에이티넘 파트너스가 패밀리 오피스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패밀리 오피스가 등장한 지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이후 눈에 띄는 설립 사례는 손에 꼽힌다.

한국은 패밀리 오피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구조다. 초고액 자산가가 패밀리 오피스를 설립해 자금을 운용할 경우, 운용 수익에 법인세가 1차로 부과되고 이후 수익 분배 시 배당소득세가 다시 적용되는 이중과세 문제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패밀리 오피스의 실질 수익률이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홍콩, 유연성 큰 금융 환경으로 FO 수요 흡수

패밀리 오피스 수요가 홍콩으로 몰리는 배경에는 자산 증식과 운용의 유연성이 있다. 홍콩은 중국과 맞닿아 있어 중국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한다. 인접한 중국 선전에는 화웨이, ZTE, 텐센트 등 주요 기업이 밀집해 있다. 홍콩과 마카오, 광둥성 9개 주요 도시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인 광둥·홍콩·마카오 대만구 역시 홍콩의 거점 가치를 높이고 있다. 홍콩 북부 지역 전체를 정보기술(IT), 산업, 대학 등 복합 혁신 허브로 개발하는 ‘노던 메트로폴리스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홍콩 스카이라인 모습 / 홍콩투자청 제공

더구나 홍콩은 주요 아시아 도시까지 4시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홍콩에서는 2025년 한 해 동안 총 119건의 기업공개(IPO)가 이뤄졌다. 이 가운데 4건은 지난해 글로벌 IPO 규모 상위 10위 안에 포함됐고, 전체 조달 금액은 360억 달러(약 52조원)를 넘어선다. 홍콩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가입도 추진하고 있어 한국은 물론 중국·일본과 공동경제권 형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스와로브스키 인터내셔널 홀딩의 로버트 북바우어 부회장은 패밀리 오피스와 장기적 유산(legacy)을 중시하는 기업의 관점에서 “홍콩은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 비즈니스 친화적 환경을 갖춘 도시로, 장기 성장을 고려하는 패밀리 오피스에 기반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비즈니스를 중시하는 문화와 기업가 정신도 유지되고 있다”며 “이런 여건이 유산 중심 기업들이 파트너십과 성장 기회를 모색하는 데 영향을 준다”고 했다. 그는 홍콩을 한 단어로 표현해 달라는 질문에 “역동적인(dynamic) 도시”라고 덧붙였다.

실제 홍콩은 패밀리 오피스 친화적인 제도를 갖추고 있다.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중국과는 독립적인 사법 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출입국·통화·재정·조세 제도 역시 별도로 운영된다. 외환 규제가 없어 모든 주요 통화로 자금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홍콩투자청에서 패밀리 오피스를 총괄하는 제이슨 퐁 글로벌 헤드는 “홍콩은 패밀리 오피스가 유동성과 기민성을 고려한 자산 관리 전략을 운용하기에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며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은 전문가들도 다수 활동하고 있어, 한국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가족 거버넌스 설계와 사업 확장 관련 자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