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리조트와 깨끗한 백사장으로 유명한 태평양 인기 휴양지 피지에서 최근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가 급증하고 있다.
4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인구 100만명이 채 되지 않는 피지에서 최근 HIV 감염률이 빠르게 증가해 현지 보건 시스템이 심각한 부담을 받고 있다. HIV는 감염되면 면역 체계가 서서히 약해진다. 이때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에이즈(AIDS·후천면역결핍증후군)로 이어질 수 있다.
피지에서는 2024년 최소 1583건의 HIV 감염 사례가 확인됐다. 이는 피지 사상 최고치로, 2018년 대비 500% 증가한 것이다. 유엔에이즈합동계획(UNAIDS)과 피지 보건부에 따르면 올해 피지의 HIV 감염자 수는 30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지난해 대비 약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현지 보건 통계에 따르면 신규 HIV 감염은 대부분 15~34세의 젊은 층에서 발생했다.
감염이 대폭 확산한 원인으로는 마약 사용 증가와 위험한 투약 관행이 가장 큰 것으로 지목됐다. 현지 사회 활동가들은 10세 어린아이들까지 마약을 하는 것이 목격됐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피지에서는 주사기를 함께 사용하는 등 안전하지 못한 마약 투약 관행이 만연하다. 일부는 이른바 ‘블루투싱(Bluetoothing)’과 같은 위험한 방식으로 약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는 마약을 구하지 못한 사람이 이미 약물에 취한 다른 사람의 혈액을 뽑아 자신의 몸에 주사하는 행위다.
이 같은 상황에 피지 정부는 지난해 1월 공식적으로 ‘HIV 발병’을 선언하고 국가적 위기 대응에 나섰다. 피지 보건의료부는 HIV 관련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WHO 등과 협력해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한 긴급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현재는 멸균 주사바늘을 무료 배포하는 프로그램이 추진 중이다.
유엔개발계획 관계자는 “피지에서의 HIV 확산은 단순 보건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공동체, 발전을 위협하는 문제”라며 “HIV 검사와 치료 접근성을 확대해 누구도 의료 체계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여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지에서는 특정 집단을 향한 사회적 낙인과 감염자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HIV 치료 및 예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HIV 인식 개선 단체 리빙포지티브피지의 마크 샤힐 랄은 “유대감이 강한 사회인 피지에서는 사생활 보호가 어렵고 사람들은 판단받는 것을 두려워한다”며 “안타깝게도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그들은 낙인과 수치심,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지에서는 성 관련 건강에 대한 대화가 여전히 금기시된다. 이 같은 침묵이 HIV 감염 사실을 숨기고, 예방과 적절한 지원을 어렵게 만든다”라며 “이런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침묵을 깰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