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8일 치러지는 일본 중의원(하원) 선거를 앞두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에 대한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트럼프가 다른 나라 선거에서 특정인을 미는 발언을 한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핵심 동맹이자 주요 7국(G7)의 선거에까지 개입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트럼프는 5일(현지 시각)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8일 위대한 나라 일본은 매우 중요한 선거를 치른다”며 “다카이치 총리는 자신이 강력하고 힘세며 현명한 지도자임을 이미 입증했다. 나는 3월 19일에 다카이치 총리를 백악관에서 맞이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녀(다카이치 총리)가 일본인들을 실망시킬 일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선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현직 총리의 승리를 기정사실화하고 구체적인 미·일 정상회담 날짜까지 못 박은 것이다. 트럼프는 이번 지지 선언의 배경으로 안보와 무역을 꼽았다. 그는 “미국과 일본은 국가안보 뿐만 아니라 양국 모두에 크게 도움 되는 큰 무역 합의를 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왔다”고 강조했다.
현재 일본 선거 판세는 다카이치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의 압승이 예고된 상태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6일 “여론 조사와 자체 분석 결과, 자민당은 전체 465석 가운데 단독 과반 확보는 물론이고, 국회의 모든 상임위의 위원장 확보가 가능한 절대 안정 다수(261석)가 예상된다”며 “연립여당인 일본유신회까지 합치면 3분의 2 이상도 넘볼 수 있다”고 했다. 같은날 마이니치신문도 자민당이 단독으로 300석을 돌파할 가능성이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이런 상승 분위기에 트럼프의 공개 지지까지 더해져 자민당의 ‘역대급’ 승리를 점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자민당은 중의원에서 일본유신회와 합쳐 겨우 과반수를 점하고 있고, 참의원(상원)은 ‘여소야대’ 상태다. 게다가 자민당 내부에도 반(反)다카이치 성향의 의원이 적지 않아, 다카이치 내각은 단독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중의원 해산’ 승부수를 던진 다카이치가 이번 총선에 압승하면 총리 장기 집권이 확실시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추구해온 ‘보통 국가화’(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의 전환)를 위한 헌법 개정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바라고 있는 트럼프가 다카이치 전폭 지지 선언을 한 배경에도 이런 계산이 깔려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일본 일각에서는 개헌 등 민감한 이슈가 걸린 선거에 미국 대통령이 개입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반응도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외국의 선거 기간 중에 특정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내정 간섭에 해당한다”고 했다. 일본 정부의 부대변인인 사토 게이 관방부장관은 “정부 차원에서 언급을 삼가겠다”면서도 “(미·일 정상회담은) 미국이 제시한 일정으로 방문하는 방향으로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은 일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는 전 세계 우파·포퓰리즘 지도자들의 당선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지난해 11월 온두라스 대선 당시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에서 보수 성향의 나스리 아스푸라 후보를 지지하며 “나는 온두라스 국민들이 아스푸라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기를 희망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경쟁 후보에 대해서는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했는데, 결국 접전 국면에서 아스푸라가 당선됐다.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역시 미국의 금융 지원을 배경으로 한 트럼프의 공개 지지 속에 지난해 10월 의회 중간선거에서 승리했다.
유럽에서도 트럼프의 선거 개입은 진행형이다. 이날 트럼프는 오는 4월 총선을 앞둔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에 대해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며 “그는 진정 강하고 힘 있는 지도자”라고 칭송했다. 작년 6월 치러진 폴란드 대선에서는 트럼프가 지지한 보수 성향의 카롤 나브로츠키 후보가 예상을 깨고 승리했다. 나브로츠키는 선거 한 달 전 트럼프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찾았고, 트럼프의 측근들도 폴란드를 방문해 그를 지지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이 같은 행태가 우파 지도자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려는 계산된 전략이라고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