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밤(현지 시각) 이탈리아 밀라노 산타줄리아 아이스하키 아레나 내부에 공사 자재가 널브러져 있는 모습. 올림픽 개막 닷새 전인데도 완공이 안 됐다. /장련성 기자
1일 오후(현지 시각) 이탈리아 토리노 이날피 아레나의 모습. 지난 2006년 동계 올림픽 당시 아이스하키가 열린 곳이다. /장련성 기자

“이렇게 좋은 경기장을 안 쓰고, 왜 새로 만든다고 했는지 안타깝네요.”

1일 오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서쪽으로 약 120㎞, 자동차로 1시간 30분 정도 달려 토리노 ‘이날피 아레나’에 도착했다. 20년 전인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때 아이스하키 경기장으로 쓴 건물 외벽엔 아직 오륜기 장식이 붙어 있었다. 주민 마르코(50)씨는 “밀라노 아이스하키 경기장이 아직 공사 중이라는 뉴스를 봤다”며 “이 경기장을 올림픽 때 써서 시간과 돈을 아끼자는 얘기가 있었지만, 도움이 안 된 듯하다”며 혀를 찼다.

이날피 아레나에서 3㎞쯤 떨어진 ‘오벌 링고토’에선 8000여 관중이 빼곡히 들어찬 가운데 피트니스 대회가 한창이었다. 토리노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이었던 곳으로 지금은 각종 전시회나 실내 스포츠 대회 장소로 쓰인다. 피겨스케이팅 무대였던 토리노 시내 ‘팔라벨라’ 링크, 알파인 스키가 열린 시 외곽의 스키 리조트에선 여전히 각종 대회가 활발히 열린다.

6일 개막하는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의 주요 화두는 ‘두 도시 올림픽’이다. 밀라노는 올림픽 개최를 위해 북동쪽으로 약 420㎞, 차로 6시간이나 떨어진 알프스산맥 자락의 코르티나와 손을 잡았다. 밀라노에 없거나, 준비하기 어려운 경기장 시설을 보완하려는 선택이었다. 코르티나가 1956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이력이 있지만, 인구가 고작 5500명인 소도시여서 대대적인 인프라 보강이 필요했다. 관중 수송을 위해 스키 경기장엔 수백억 원을 들여 케이블카를 신설했지만,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 새로 만든 봅슬레이·스켈레톤 경기용 썰매 트랙은 1억2000만유로(약 2070억원)를 쏟아부었지만, 졸속 완공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1일 밤 (현지 시각) 이탈리아 밀라노 산타줄리아 아이스 하키 아레나에서 막바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장련성 기자

올림픽 경기장 관련 잡음이 잇따르자 이탈리아에선 밀라노가 공동 개최지로 토리노를 배제한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물리적인 거리도 가깝고, 올림픽 인프라가 충실히 갖춰졌음에도 토리노를 외면하고 굳이 코르티나를 선택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현지에선 올림픽 유치 과정 당시 밀라노와 토리노 행정 책임자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이탈리아 북부의 ‘맹주(盟主)’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두 도시의 뿌리 깊은 라이벌 의식이 작용한 영향으로 분석한다. 한마디로 수천억원의 비용 절감과 원활한 대회 운영이라는 ‘실리’보다 자존심 같은 ‘지역감정’을 앞세운 게 패착이 됐다는 것이다.

1일 오후(현지 시각) 이탈리아 토리노의 오벌 링고토에서 피트니스 스포츠 행사가 열리고 있다. 지난 2006년 동계 올림픽이 이곳 토리노에서 개최되면서 아이스하키장, 스피드스케이팅 등 경기장이 설치되어 있지만, 이번 '2026년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에선 토리노가 외면 받았다. /장련성 기자

토리노를 떠나 밀라노 ‘산타 줄리아’ 아이스하키 경기장을 찾았다. 당장 5일에 여자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복도 바닥엔 공사 자재와 비닐이 그대로 널브러져 있고, 일부 기둥엔 페인트칠도 안 돼 있었다. 이 경기장은 원자재비 폭등의 영향으로 건설비만 4000억원을 훌쩍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민자 사업이어서 시민 세금은 안 들어갔다고 해도, 대중교통망 연결 등 주변 인프라 구축에 들어간 돈이 만만치 않다. 대형 전시장 ‘피에라 밀라노’에 임시로 만든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도 도마에 올랐다. 임시 아이스링크 설치에 5개월간 약 300억원을 투입했는데,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 빙상 관계자들 사이에선 “빙질(氷質)이 불안정하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밀라노가 올림픽 파트너로 낙점한 코르티나에 새로 지은 썰매 경기장도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거액을 들이고도 공사 기간이 늘어져 작년 11월에야 테스트 이벤트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썰매 종목만 오스트리아나 미국에서 개최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이탈리아가 2026 올림픽 유치를 준비하던 초기엔 토리노도 공동 개최지에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밀라노 중심으로 올림픽이 진행된다는 이유로 토리노가 빠졌고, 결국 밀라노와 코르티나 공동 개최로 결정됐다. 이후엔 토리노 측이 ‘비용 절감’ 등을 내세워 밀라노 조직위원회 측에 수차례 협력을 제안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썰매 경기장의 경우, 신축 비용 2000억원을 쓰는 대신 토리노 트랙을 500억원에 개·보수해 재개장하자고 했지만, 밀라노 측이 거부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지역 이기주의 때문에 불필요한 낭비가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이탈리아의 도시공학 전문가 베아트리체 치테리오는 현지 매체에 “봅슬레이 트랙 건설 등에 막대한 혈세를 투입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친환경 저비용 개최라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기조와도 맞지 않는 대회가 됐다”고 비판했다. 김도균 경희대 체육대학원 교수는 “올림픽을 ‘도시 브랜딩’의 계기로 삼는 과정에서 효율성이나 합리성은 우선순위가 밀린 것 같다”고 말했다.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 현장을 취재하는 김동현(왼쪽)·이태동(가운데)·장련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