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에 반대하는 시위자가 17일 '미국을 물러가게 하라'(Make America Go Away)라고 쓰인 모자를 쓰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 병합 시도를 반대하는 시위가 지난 17일 덴마크 본토와 그린란드 전역에서 열렸다. 이들은 ‘미국을 물러가게 하라’(Make America Go Away)는 뜻의 모자를 쓰며 트럼프 대통령의 병합 시도를 규탄했다.

18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전날 오후 그린란드 수도 누크에선 옌스 프레데리크 닐센 총리를 포함해 5000명의 시위대가 그린란드 국기를 들고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매입 야욕을 규탄했다. 이는 누크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들은 그린란드 국기를 흔들고 그린란드어로 섬의 이름인 ‘칼랄리트 누나트(Kalaallit Nunaat)’를 외치며 미국 영사관까지 행진했다.

원주민 이누이트족의 전통 노래를 부르며 자결권을 존중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린란드 공무원 나야 홀틈은 “그린란드는 사고팔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시위에 참가했다. 그린란드는 장난감이 아니라 우리의 고향”이라고 했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17일 진행된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에 반대하는 시위./ 엑스(x)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17일 진행된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에 반대하는 시위./ 엑스(x)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시청 광장에도 시민 약 1만명이 모여 “그린란드는 판매용이 아니다” “그린란드에서 손 떼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미국 대사관까지 행진했다. 일부 참가자는 트럼프 정치 구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비틀어 ‘미국 물러가라’(Make America Go Away)라고 새긴 빨간 야구 모자를 썼다. 마가를 패러디한 이 모자는 덴마크에서 매진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은 이미 ICE가 너무 많다’는 팻말도 등장했다. 최근 강력한 불법 체류자 단속으로 미국에서 지탄받고 있는 미 이민세관단속국(ICE)과 얼음(ice)이 많은 그린란드에 대한 트럼프의 야욕을 동시에 꼬집은 말이다.

수산네 크리스텐센은 미국 NBC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린란드를 지원해야 한다. 우리는 덴마크인이고 그린란드인도 덴마크인”이라고 했다. 집회는 오르후스·올보르·오덴세 등 덴마크 주요 도시에서도 열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 카드를 꺼내 들며 그린란드에 집착하고 있다. 그는 17일 밤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그린란드 매입에 반대하는 유럽 8국에 2월 1일부터 10% 관세를 부과하고, 6월 1일부터는 이를 25%로 인상하겠다고 했다.

이 같은 조치에 시위 현장에선 분노가 터져 나왔다. 누크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은 AP 인터뷰에서 “오늘이 제일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더 나빠졌다”고 했다.

지난 17일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 주민들이 그린란드 국기와 ‘그린란드는 판매용이 아니다’라는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수도 누크에 있는 미국 영사관 앞에 모여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그린란드를 미국으로 편입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드러내자 이에 반발한 그린란드 주민들의 집회가 잇따르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소셜미디어에 그린란드 합동 군사훈련에 참여한 나토 동맹국에 대한 징벌적 관세 부과 계획까지 밝혔다./게티이미지코리아

인구 5만7000명의 그린란드는 과거 덴마크의 식민지였으나 1979년 자치권을 획득해 외교·국방을 제외한 교육·보건·자원 관리 등은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때 그린란드에 피투피크 우주기지를 건설해 주둔해 오고 있다. 피투피크 군사기지는 러시아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가장 먼저 탐지하는 미군 조기경보시스템의 핵심이다. 이곳에서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4400㎞로 미국 본토 기지보다 절반 가까이 짧아 유사시 신속한 군사 지원이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의 전략적 가치와 희토류·석유 등 풍부한 광물 매장량을 이유로 그린란드가 미국의 안보에 중요하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