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령 그린란드 장악 구상을 공식화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군사적 조치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자, 덴마크가 “공격받을 경우 즉각 반격할 수 있다”며 맞대응에 나섰다. 여기에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미국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고하게 유지돼 온 ‘대서양 동맹’의 균열이 심화하고 있다. 사진은 덴마크 해군의 라우게 코흐함이 지난해 3월 그린란드 수도 누크 인근 해역을 순찰하는 모습./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그린란드 야욕이 얼어붙어 있던 북극권을 단숨에 글로벌 지정학의 최전선으로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다. 미국은 7일 동맹국 덴마크의 자치령인 그린란드 매입을 공식적인 외교 정책 목표로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부터 언급해 온 그린란드 편입설은 당초 특유의 ‘거래의 기술’이나 ‘부동산 사업가적 블러핑’쯤으로 치부됐으나, 최근 베네수엘라 공습 이후 구체적인 안보·군사 옵션과 결합하며 대서양 동맹을 뿌리째 뒤흔드는 뇌관으로 부상했다. 미국 정부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 영토를 대상으로 매입 의사를 넘어 군사적 수단까지 거론한 것은 전례 없는 일로, 유럽 외교가는 이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국제 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7일 의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는 그린란드 매입”이라며 ”다음 주 그들(덴마크)과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라고 했다. 루비오 장관은 “이것은 애초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였으며, 국가 안보 차원에서 그린란드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그린란드 문제와 관련해 언론에 “군 통수권자가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한 선택지 중 하나”라고도 했다. 이는 최근 미군이 베네수엘라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 작전을 감행한 직후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엄포 이상의 실체적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美 그린란드 장악 땐… 中 북극 실크로드와 러 핵잠 동시 차단 가능

미국이 동맹의 반발을 무릅쓰고 그린란드에 집착하는 배경에는 북극권을 둘러싼 패권 경쟁과 안보 전략의 재편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그린란드는 국가 안보상 필수적”이라며 “러시아와 중국 선박이 그린란드 주변을 뒤덮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픽=백형선

전문가들은 그린란드를 북대서양 방어의 핵심 요충지로 꼽는다. 그린란드(G)와 아이슬란드(I), 영국(UK)을 잇는 이른바 ‘GIUK 해협’은 러시아 북방함대 핵잠수함이 대서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다. 미국이 이곳을 통제하면 러시아의 진출을 원천 봉쇄할 수 있다. 이미 미군은 그린란드 북서부 ‘피투피크(Pituffik) 우주 기지’에 미사일 조기 경보 레이더를 운용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구상하는 다층 미사일 방어 체계인 ‘골든 돔(Golden Dome)’ 완성을 위해서도 북극권 감시 자산 확충은 필수적이다.

자원과 항로 선점 또한 핵심 동력이다. 그린란드 빙하 아래에는 ‘첨단 산업의 쌀’인 희토류와 석유, 천연가스가 대량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重)희토류 매장량은 약 3850만t으로 세계 매장량(약 1억2000만t)의 3분의 1 수준에 달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 세계 희토류 공급망을 장악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그린란드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북극 항로를 이용해 경제·군사적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북극 실크로드’ 구상을 노골화하는 상황에서, 그린란드를 뺏기면 미래 자원 전쟁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단순한 영토가 아닌 ‘지구상 최고의 부동산 매물’이자 경제·안보 복합 자산으로 인식하는 이유다. 김병기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 입장에선 좀 약한 주인이 있는 부동산이 있는데, 적들이 와서 자꾸 눈독을 들이니 아예 내가 갖겠다는 구상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확보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직접 매입이다. 미국은 1867년 국무부 보고서를 통해 그린란드 매입을 검토했고, 1946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덴마크에 1억달러 상당의 금괴를 지불하고 그린란드를 사겠다고 제안했던 전례도 있다. 루비오 장관이 “새로운 입장이 아니며 전직 대통령들도 검토했던 사안”이라고 강조한 것도 역사적 맥락을 근거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덴마크 정부가 “그린란드는 매물이 아니다”라며 완강히 거부하는 상황에서 ‘분리 독립 후 연합’ 방식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미 정보기관들은 그린란드 주민의 90%를 차지하는 ‘이누이트족’이 덴마크로부터 분리 독립하려는 동향을 면밀히 파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측근들이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덴마크가 그린란드를 통제할 권한이 무엇인가”라며 자치권을 자극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린란드가 독립하면 미국이 마셜제도나 팔라우 등 태평양 도서국과 맺은 ‘자유연합협정(COFA)’ 모델을 적용, 국방·안보 권한을 넘겨받는 대신 막대한 재정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그린란드를 찾은 JD 밴스(오른쪽 둘째) 미 부통령과 배우자 우샤 밴스(왼쪽 둘째)가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 피투피크 미군 우주 기지를 둘러보고 있다. / AP 연합뉴스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군사적 개입이다. 폴리티코는 군사 전문가들을 인용해 “인구가 5만7000여 명에 불과하고 자체 군사력이 전무한 그린란드를 점령하는 것은 군사 기술적으로 30분도 걸리지 않을 일”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나토 회원국 침공이라는 정치적 부담 탓에, 실제로는 경제적 압박이 선행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의 주력 기업인 ‘노보 노디스크(비만 치료제 위고비 제조사)’ 등에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며 덴마크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전술이다.

유럽의 당혹감은 커지고 있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7국은 공동 성명에서 “그린란드는 주민의 것”이라며 덴마크를 지지했다.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국제법 위반을 용인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미국의 행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국제 질서의 붕괴를 의미한다”며 강하게 맞섰다. 덴마크 언론은 덴마크군이 공격받았을 때 ‘선반격 후보고’하도록 한 1952년 교전수칙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국방부가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그린란드 주둔 덴마크군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미국 내 파장도 거세다. 공화당 상원 원로인 미치 매코널 의원은 “동맹국 영토를 무력으로 빼앗겠다는 발상은 전략적 자해 행위”라고 비판했다. 반면 공화당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전략적 방어 구상은 ‘미국 우선주의’의 핵심”이라며 행정부를 옹호했다.

미 의회에는 이미 정부에 그린란드 매입 협상 권한을 부여하는 ‘그린란드를 다시 위대하게 법’(Make Greenland Great Again Act) 등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역사상 최대 영토 확장이었던 ‘루이지애나 매입(1803년)’의 신화를 재현하겠다는 상징적 차원에서 지난달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를 ‘그린란드 특사’로 임명한 뒤, 덴마크 정부를 배제한 채 그린란드 자치정부와 직접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외교적 마찰을 넘어 서방 동맹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실존적 위기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