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의 주유구가 있는 방향을 나타내는 모일런 화살표.

지난달 11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헨리 포드 병원에서 제임스[짐] 모일런이란 이름의 남성이 80세로 사망했다.

전세계에서 그의 이름을 아는 이는 매우 드물겠지만, 어느 나라에서든 자동차 운전대를 잡는 사람은 대시보드에서 모일런의 발명품을 접하게 된다. 바로 자동차의 주연료 주입구ㆍ충전 포트가 있는 쪽을 가리키는 화살표, 이른바 ‘모일런 화살표(Moylan Arrow)’다. 운전자들은 이 화살표가 주유ㆍ충전 방향인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과, 여전히 모르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토모티브(Automotive) 뉴스에 따르면, 포드 자동차에서 근무하던 모일런은 1986년 4월 회사 공용차량을 몰고 본사 캠퍼스 건너편으로 가다가 연료가 거의 없는 것을 확인하고 주유소에 들렀다. 그러나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그는 주유구 덮개가 주유기의 반대쪽에 오게 차를 세웠다. 주유기 위에 천장이 없었던 탓에 모일런은 비를 흠뻑 맞았지만, 다시 차를 한바퀴 돌려 제대로 세울 즈음엔 이미 이런 실수를 방지할 수 있는 표시를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모일런이 1986년 4월 포드 사에 최초로 제안한 주유구 표시 스케치. 덮개가 열린 주유구의 위치로 알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나중에 단순한 화살표로 디자인 됐다.
자동차 연료 게이지 주유구의 위치를 표시하는 모일런 애로우(노란색 원).

사무실로 돌아온 모일런은 젖은 코트를 벗지도 않고, 바로 연료 주유기 옆에 주유구 덮개가 열려 있는 그림을 곁들인 ‘제품 편의성 개선 제안’ 초안을 작성했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포드의 모든 제품 라인의 주유구가 같은 쪽에 위치하게 되더라도, 회사로서는 약간만 투자해도 (서로 다른 회사의) 차량 두 대를 소유한 가정 뿐만 아니라 카풀(car pool) 이용자, 렌터카 고객에게도 충분히 가치 있는 편의가 될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모일런은 그 제안서를 보내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모일런은 2018년 한 팟캐스트에서 “작성해서 제출하고는 완전히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드 경영진은 이를 눈여겨봤고, 나중에 ‘모일런 애로우’라고 알려지게 될 작은 방향표시등의 시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7개월 뒤, 모일런은 포드 사의 인테리어 디자인 책임자로부터 “훌륭한 아이디어”라는 반응과 함께 1989년 출시되는 차량부터 대시보트에 ‘모일런 애로우’가 들어갈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실제로 그해 나온 포드에스코트, 머큐리 트레이서에 이 주유구 방향 표시등이 처음 적용됐다.

곧 전세계 경쟁 자동차 회사들이 이를 베꼈고, 불과 수년 만에 이 ‘모일런 애로우’는 업계 표준이 됐다.

모일런은 이 화살표에 대해 어떠한 금전적 보상이나 특허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가 포드 사로부터 받은 공식적인 보상은 회사의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그에게 마치 마법의 혁신 공장을 견학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자동차 연료 게이지 주유구의 위치 표시 화살표를 제안한 포드사 엔지니어 제임스 모일런./HYPEWHIP 인스타그램

당시 주요 자동차업계 잡지들은 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낸 “숨은 천재에 대해 감사히 생각한다”고 했지만 한 번도 그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다. 모일런은 1968년 제도사로 시작한 포드에서의 35년 근무를 제품엔지니어링 디자인 관리자로 마치고 2003년 퇴직했다.

그의 이름이 처음 세상에 드러난 것은 2018년 한 팟캐스트에서 청취자가 이 주유구 방향표시등의 창안자가 누구인지를 물으면서였다. 팟캐스트 측은 포드사 홍보실에 문의를 했고 때마침 모일런의 딸과 친해 이 표시등의 유래를 잘 알고 있었던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모일런이 이 팟캐스트와 인터뷰를 했다. 또 수년 뒤에는 포드 사가 과거 자료들을 모두 스캔해 데이터베이스화하면서, 모일런의 원본 제안 메모와 같이 묻혀 있던 보물들도 발굴됐다.

포드 사의 CEO인 짐 팔리(Farley)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사람들은 헨리 포드처럼 새로운 기업을 일군 창업자들을 좋아하지만, 짐 모일런 역시 똑같이 우리 일상을 더 낫게 만든 엔지니어”라며 “주유구 화살표를 볼 때마다 모일런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모일런은 이후에도 여전히 주유소에서 차를 잘못 세워 당황하는 이들을 보면, 친절하게 대시보드 속 화살표의 의미를 알려줬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도 자신이 그 아이디어를 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모일런의 유족은 부고에서 “가족은 전세계 차량에 부착된 연료 주유구 표시기를 발명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며 “꽃 대신에, 환자의료지원기금이나 머시 공과대학에 기부해달라”고 당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12월28일 추모예배를 집전한 부제(副祭)는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하느님 아버지, 저는 당신이 어떤 차를 모는지, 아니면 운전기사가 있는지 모르지만, 짐은 차를 어느 쪽으로 대고 주유해야 하는지 늘 알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