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미군에 의해 폭격 당하는 차베스 묘의 모습 /유튜브 캡처

미국은 니콜라스 마두로 체포 작전에서 베네수엘라 군사 시설뿐 아니라, 마두로의 정신적 지주인 우고 차베스(1954~2013) 전 대통령 묘소가 있는 카라카스 서부의 ‘쿠아르텔 데 라 몬타냐(산악 요새)’를 폭격했다. 2013년 숨진 차베스 유해가 안치된 곳으로, 마두로 정권에겐 성역(聖域)이다. 해발 1000m 고지에서 대통령궁을 내려다볼 수 있다. 마두로 정권은 매일 이곳에서 차베스 사망 시각인 오후 4시 25분에 대포를 쏘며 차베스를 기려왔다.

이 요새는 극렬 반미, 좌파 성향인 차베스주의(차비스모)가 탄생한 베네수엘라 좌파 혁명 발원지이자 심장부다. 1992년 2월 4일, 당시 무명의 공수부대 중령이던 차베스는 이곳을 지휘 본부로 삼아 쿠데타를 일으켰다. 부패한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정권을 뒤엎으려는 시도였다. 쿠아르텔 데 라 몬타냐 건물에 있는 ‘4F’는 쿠데타가 일어난 날짜인 2월(F) 4일(4)을 뜻한다. 다만 일각에선 “미군이 차베스 묘소가 아닌 묘소 인근의 민병대 건물을 폭격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우고 차베스의 유해가 있는 쿠아르텔 데 라 몬타냐의 모습. /위키피디아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차베스가 투항 직전 이곳에서 진행된 72초간의 TV 생중계 연설은 베네수엘라 역사를 뒤바꿨다. 그는 “단지 지금은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기회는 다시 올 것”이라고 말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 한마디가 군 장성이던 그를 정치적 스타로 급부상시켰고, 1999년 대통령에 올려놓았다. 차베스가 정치 생명을 시작한 곳이자 죽어서 돌아온 이곳을 타격한 것은 베네수엘라 현대사를 관통하는 상징을 지우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번 공격은 물리적 피해를 넘어 적의 심리 붕괴를 노린 ‘효과 중심 작전(EBO)’이다. 마두로 대통령은 차베스 후계자를 자처하며 집권했으나, 카리스마 부족으로 정통성 시비에 시달려 왔다. 공식 석상에서 “작은 새가 되어 나타난 차베스의 영혼과 대화했다”고 주장할 정도로 ‘차베스 팔이’에 의존해 왔다. 그런 그에게 차베스 묘소는 권력을 지탱하는 지지대와 같았다.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 성지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줘 ‘당신들의 신(神)은 더 이상 마두로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주려 했다”고 분석했다.

9일 이라크의 바그다드 시내 중심부 ‘천국의 광장’에서 미군이 쓰러뜨린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동상을 향해 한 시민이 돌을 던지고 있다. 이 동상은 처음 바그다드 시민들이 밧줄을 걸어 쓰러뜨리려 했으나 잠시 후 시민 수백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군 특수 장비가 동원돼 쇠사슬을 걸어 당겨 쓰러뜨렸다. /조선DB

적국 지도자 상징물을 파괴해 사기를 꺾는 미국의 전술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에도 미군은 개전 20일 만에 바그다드를 함락한 후 도심 광장의 사담 후세인 동상부터 밧줄로 묶어 쓰러뜨렸다. 해병대 공병대 구난전차(M88)를 동원한 것이다. 시민들이 그 얼굴을 신발로 때리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며, 1979년부터 이어진 후세인 독재 정권이 끝났음을 알렸다.

1989년 파나마 침공 때도 미군은 파나마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의 사령부(La Comandancia)를 폭격해 무력화한 뒤, 시내 곳곳에 걸려 있던 노리에가 대형 초상화와 선전 벽화를 집중적으로 제거하거나 훼손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징물 파괴가 ‘우상 파괴(Iconoclasm)’의 현대적 변용이라고 분석한다. 독재 국가일수록 지도자를 신격화하여 통치 수단으로 삼는데, 그 상징물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지도자가 ‘불멸의 존재’가 아닌 ‘제거 가능한 인간’임을 증명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