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국제 질서가 붕괴하고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시대. 2026년에도 세계는 전쟁과 갈등, 이념 대결로 요동칠 전망이다. 언제 어디서 지각변동이 일어날지, 주목해야 할 글로벌 ‘핫 스폿’ 여섯 지역을 꼽았다. 한국에도 충격파를 미칠 진원(震源)에 해당하는 곳들이다.
◇1월 미국 뉴욕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 뉴욕에서 새해 첫날 조란 맘다니가 시장으로 취임한다. ‘새로운 시대(New Era)’를 선언한 그는 전임 시장들과 달리 폐쇄된 옛 지하철 시청역에서 선서할 예정이다. 맘다니는 아치와 샹들리에, 돔형 천장으로 장식됐던 이 역이 “노동자의 삶을 변화시킬 건축물을 만들고자 했던 도시의 용기를 보여주는 기념비”라고 했다. 취임식 장소부터 주요 지지층인 노동자를 겨냥해 전략적으로 선택했다는 의미다.
무상 교육 확대, 임대아파트 월세 동결, 시내버스 무료화 등 자칭 ‘민주사회주의자’ 맘다니의 급진적 좌파식 실험이 뉴욕에서 통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원은 고소득층과 기업 대상으로 세금을 올려서 확보한다는 계획인데, 이는 주 정부와 의회의 승인이 필수인 사안이어서 현실적 장벽에 부딪칠 가능성도 있다. 사상 첫 무슬림 시장인 그가 2001년 9·11 테러의 상처가 여전한 뉴욕의 정서를 극복할 수 있을지, 강력한 반이민 정책을 추진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충돌을 피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2월 우크라이나 돈바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면서 시작된 전쟁이 햇수로 5년째에 접어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재하는 평화 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개전 만 4년을 맞는 2월 전에 종전이 성사될지 주목된다.
요충지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주) 지역 문제가 협상 타결의 최대 고비다. 러시아는 이미 이 지역의 90%를 차지하고도 돈바스 완전 장악이라는 전쟁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사수하고 있는 나머지 10% 요새 지역이 향후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 지역에서 양국 군대를 일단 철수시키고 비무장지대·경제자유구역을 설치하자는 구상이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돈바스를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전쟁 발발 이후 현재까지 양측에서 150만명에 달하는 군인이 죽거나 다쳤고, 우크라이나에선 전체 인구의 25%인 1000만명 가량이 난민 신세가 됐다. 6·25전쟁 기간(3년 1개월)을 이미 넘어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인적·물적 피해를 기록 중이다.
◇4월 중국 베이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베이징 방문을 계기로 미·중의 ‘빅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열렸던 정상회담이 의제를 명확히 하는 ‘사전 정지작업’이었다면, 올해 베이징 회담은 이를 바탕으로 양국이 타협을 통해 세계 질서를 새롭게 양분하는 기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중의 패권 경쟁이 무역을 넘어 경제·안보까지 아우르는 양상으로 진행되는 만큼, 관세·교역뿐 아니라 기술·투자 규제와 공급망 문제, 안보 현안에 이르는 포괄적 협상안이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방한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던 트럼프는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 다시 오겠다”고 했었다. 이에 따라 트럼프가 베이징 방문 전후로 평양 등에서 북한과 대화 재개를 모색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입장에선 올해 미·중 정상회담이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경제·안보 구도가 한꺼번에 흔들리는 고비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상반기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미국이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상대로 전면적 군사 작전을 감행할지 이목이 쏠린다. 미국은 지난해 9월 이후 카리브해 일대에서 마약 운반 의심 선박을 30여 차례 공격해 100명 이상을 사살했고, 지난달 초에는 베네수엘라 항만 시설을 드론으로 타격했다. 그러나 해상 봉쇄, 유조선 나포 등의 경제적 방식으로 베네수엘라를 압박하면서도 본격적 침공에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는 배경에는 마두로의 좌파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맞서 마두로는 대규모 반미(反美) 시위를 주도하고 “평화로운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자국민을 상대로 항전 의지를 고취하고 있다.
미국은 군사력으로 베네수엘라를 압도하지만 지상 작전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국제법 저촉 논란에 휘말릴 수 있고, 미군의 희생이 커지면 국내에서도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중국·러시아가 유엔에서 미국을 상대로 위협 중단을 촉구하는 상황도 변수가 될 수 있다.
◇10월 브라질 브라질리아
중남미를 휩쓰는 블루타이드(blue tide·우파 연쇄 집권)의 분수령이 될 브라질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 이 지역 최대 국가인 브라질에서도 우파가 집권하면 블루타이드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채워지게 된다. 반면 반미·좌파 성향 현 정권이 승리할 경우 ‘푸른 물결’의 기세가 꺾일 수 있다. 현재 중남미에선 아르헨티나·칠레·에콰도르·파라과이·볼리비아·파나마·온두라스 등에 우파 성향 정부가 출범했거나 들어설 예정이다.
브라질에선 ‘중남미 좌파의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이 4선(選) 도전을 시사하며 수성을 노리고 있다. 이에 맞서 우파 진영에선 쿠데타 모의 혐의로 수감중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장남 등이 출마를 선언했다. 2003~2011년 대통령을 지낸 룰라는 지난 대선에서 보우소나루를 누르고 2023년 재집권에 성공, 브라질 최초의 3선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최근 고물가·경제난이 이어지며 지지율이 하락해 입지가 좁아진 상황이다.
◇11월 미국 워싱턴 DC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2기의 운명을 가를 중간선거가 치러진다. 상·하원 모두 근소한 차이로 다수 의석을 지키고 있는 공화당이 의회에서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지가 최대 관심사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누적된 물가 부담을 전면에 내세워 총공세를 펼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 역시 강경한 이민 정책 등으로 지지층 결집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다만 집권 2년 차에 치르는 중간선거는 통상 정권 심판론이 작동해 ‘여당의 무덤’으로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간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한 사례는 1998년(빌 클린턴 행정부)과 2002년(조지 W 부시 행정부) 두 차례뿐이다.
승패에 따른 반전은 극명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 수성에 성공할 경우 트럼프는 ‘제왕적 대통령’으로서 미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게 된다. 반면 의회 주도권을 상실하면 조기 레임덕(권력 누수)과 탄핵 공방에 휘말리며 사실상 식물 정부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