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확산 중인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도로에 웅크리고 앉은 남성이 시위 진압을 위해 이동하던 경찰 오토바이 행렬을 막아서고 있다. 1989년 중국 천안문 시위 당시 전차를 맨몸으로 가로막았던 ‘탱크맨’을 연상시킨다는 반응도 나왔다./X

세계를 휩쓴 청년층의 반정부 시위가 이슬람 신정 국가 이란에 상륙했다. 미국의 제재,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화폐 가치가 폭락하면서 발생한 경제난과 물가 폭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Z세대 시위’로 아시아·아프리카·남미·유럽 등 각국에서 지도자가 물러난 데 이어 이란 청년들도 정권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31일 AP·뉴욕타임스 등 외신과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지난달 28일부터 수도 테헤란을 포함한 주요 도시에서 청년들을 주축으로 한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정부가 요동치는 환율 시장에 즉각 개입하고 투명한 경제 전략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물가·환율 변동이 극심해 수입품 판매가 마비되고, 판매자·구매자 모두 거래를 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것이다. 테헤란대, 샤리프공과대, 이스파한공과대 등 10여개 대학에서 시위가 열린 가운데 소규모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들도 시위에 가담했다.

이란 리알화 환율은 지난달 28일 달러당 142만리알까지 치솟은 데 이어, 29일에도 달러당 139만리알로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2015년 이란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맺었을 때 환율은 달러당 3만2000리알이었다. 10년 만에 화폐 가치가 44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한 셈이다.

시위대는 정권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가자(Gaza)도, 레바논도 싫다”는 구호도 등장했다. 정부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같은 외국 무장 단체를 지원하는 데 돈을 쏟아붓는 사이 국민들은 굶주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시위는 2022년 ‘히잡 시위’ 이후 최대 규모로 평가된다. 당시 20대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다가 의문사한 일을 계기로 전국에서 이어진 반정부 시위를 당국이 강경 진압해 최소 300명 이상이 숨졌다.

시위가 격화되자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중앙은행 총재를 경질하고 정부 고위 당국자가 시위대·상인 대표와 만나 직접 대화하도록 했다. 그러나 시위 현장에선 강경 진압이 계속되고, 한파에 대비한 에너지 절약을 구실로 주요 도시의 은행, 학교, 관공서가 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원천 차단하려는 정부의 고육지책이라는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