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특사를 임명하며 덴마크 주권을 위협하자, 덴마크 정부가 즉각 미국 대사를 초치하며 강력한 외교적 항의에 나섰다. 동맹국 간 영토 분쟁이 북극권 지정학적 위기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에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를 그린란드 특사로 발탁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랜드리 주지사는 그린란드가 미국 국가 안보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이해하고 있다”며 “미국 이익과 전 세계적 번영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랜드리 주지사는 즉각 화답했다. 그는 엑스(X)에 “그린란드를 미국 일부로 만들기 위해 봉사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썼다. 이는 특사의 임무가 단순한 외교 지원을 넘어 그린란드를 미국 영토로 편입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를 태운 비행기가 2025년 1월 7일 화요일 그린란드 누크에 착륙한 모습. /연합뉴스

덴마크는 즉시 반발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와 옌스 프레데리크 닐센 그린란드 총리는 공동성명을 내고 주권 존중을 요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국경과 주권은 국제법에 근거한 근본적 원칙”이라며 “국제 안보를 명분으로 타국을 병합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닐센 그린란드 총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그린란드는 그린란드인 것이며 영토 보전은 반드시 존중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외교적 대응도 뒤따랐다.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무장관은 “미국의 결정은 전적으로 수용 불가능하다”며 주재 미국 대사를 소환해 해명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덴마크 정부는 이번 임명이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를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인수 의지가 실천 단계로 접어든 신호로 본다. 미켈 룬게 올레센 덴마크 국제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특정 국가나 지역만을 위한 특사 임명은 드문 일”이라며 “그린란드를 향한 통제력을 확보하려는 고도의 전략적 에스컬레이션(단계적 확대)”이라고 분석했다.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자치령으로 2009년 자치정부법에 따라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광범위한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그린란드에 묻힌 풍부한 천연자원과 지정학적 가치에 주목해 왔다. 올해 초 JD 밴스 부통령이 그린란드 미군 기지를 방문해 덴마크가 안보 투자에 인색하다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발언으로 풀이된다.

덴마크 정보당국은 미국 측 압박이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섰다고 경고했다. 덴마크 국방정보국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이 우방국을 상대로도 경제적 수단과 군사적 위협을 동원해 의사를 관철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 역시 덴마크 입장을 지지하며 “영토 보전과 국경 불가침성은 유럽 안보 핵심”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갈등은 미국과 북유럽 동맹 간의 신뢰 관계를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특사를 앞세워 병합 주장을 지속할 경우, 북극권 안보 지형은 물론 나토(NATO) 내부 결속력에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