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개통된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오-포리 임페리알리 지하철역에서 시민들이 공사 과정에서 발굴된 고대 로마 유적들을 관람하고 있다. 지하철 공사를 할 때마다 쏟아져나오는 유물에 골머리를 앓던 로마시는 최근 개통한 두 역사(驛舍) 내에 전시 공간을 마련해 발굴된 유물을 상설 전시하기로 했다./EPA 연합뉴스

이탈리아 로마시가 최근 지하철역을 개통하면서 역사(驛舍) 내에 고대 로마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마련했다. 로마시 당국은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1.5유로(약 2600원)짜리 지하철표 한 장으로 고대 유물 수백 점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고대 유물을 보기 위해 일부러 지하철을 타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땅만 파면 유물이 쏟아져 지하철 공사가 수십 년씩 늘어지고, 공사가 진행될수록 산더미처럼 쌓이는 유물을 보존·수용할 예산과 공간이 부족한 로마가 택한 고육지책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콜로세움 앞 ‘지하철 박물관’

로마시는 16일 지하철 C 노선 ‘콜로세오-포리 임페리알리’ ‘포르타 메트로니아’ 지하철역을 개통했다. 이 중 ‘콜로세오-포리 임페리알리’ 역은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과 황제들의 포룸(광장)이 있었던 고대 로마의 심장부에 있다. 역사 내 박물관에는 공사 현장에서 발굴된 소형 청동 조각상, 목검, 도자기 주전자 등이 전시됐다. 부유한 로마인 주택의 목욕 시설 등 공사 과정에서 발굴된 유적 일부도 보존됐다.

그래픽=이진영

고대 성문의 이름을 딴 ‘포르타 메트로니아’역 공사 과정에선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근위대가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병영 시설이 발견돼 청동 주화와 장신구, 유골 등이 쏟아져 나왔다. 고고학계에서 ‘로마 군사사를 다시 쓸 놀라운 사례’ ‘미니 폼페이의 발견’ 같은 찬사가 쏟아졌다. 이 역의 박물관은 이르면 내년 초 개장할 예정이다.

2013년 착공한 두 역이 12년 만에 개통하면서 연장된 지하철 C 노선 길이는 불과 3㎞. 하루에 60~70㎝ 전진한 꼴이다. 터널을 뚫고 역 시설을 조성하는 기간보다 고고학자들이 달려와 유적의 용도를 조사하고 유물을 출토하는 데 걸린 시간이 길었던 셈이다. 지하의 진동에 민감한 유적의 붕괴를 막기 위해 토양 안정화 작업이 동시에 이뤄졌고, 땅을 파고 내려가면서 지지대 역할을 하는 콘크리트 보호벽도 조성해야 했다.

로마시 당국과 고고학계는 유적·유물 훼손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도 공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지하철역 박물관이라는 방안을 택했다. 유적·유물을 발굴 현장에 보존하는 ‘고육지책’이다. 출토된 유물을 전시·보존할 별도 박물관을 지을 예산이 부족하다는 점도 고려했다.

로마의 콜로세오-포리 임페리알리 역사 안에 전시된 고대 로마의 청동 그릇 ./로이터 연합뉴스

◇땅 파면 유물… 공사 어렵기로 유명

현재 공사 중인 C 노선은 당초 1990년대부터 계획돼 가톨릭 대희년인 2000년까지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과 성 베드로 대성당을 연결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실제 착공은 2007년에야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성 베드로 대성당 인근에 바티칸 역을 건설해 C 노선을 완공할 때까지 최소 10년은 더 걸릴 것으로 본다. 50만 점이 넘는 유물이 쏟아져 나와 공사가 지연되면서 예산은 70억유로(약 12조1305억원)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공사 과정에서 이탈리아 특유의 관료주의와 부패로 공사 지연과 예산 낭비가 되풀이되는 악순환도 발생했다. 이탈리아 감사원이 “잦은 설계 변경으로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며 “재앙적인 관리”라고 지적할 정도였다. 2018년엔 로마의 전직 시장과 교통 보좌관, 교통국장 등이 연루된 수억 유로 규모의 부패 스캔들이 불거지기도 했다. 현지 언론은 “공사 지연과 예산 증가를 모두 유물 탓으로 돌릴 수 없다”며 만성적 교통 불편에 지친 로마 시민들의 분노가 정부와 행정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지하철 박물관’ 건설은 공사가 늦어진 이유를 시민들에게 제시하기 위한 당국의 ‘변명 수단’이라는 평가도 있다.

기원전 8세기부터 고대 로마의 수도였고 이후 교황령,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였던 로마는 2800년에 이르는 역사가 지층에 그대로 보존돼 있어 전 세계에서 지하철역 공사가 가장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이 때문에 로마 지하철은 세계 주요 도시에 비해 낙후된 실정이다. 3개 노선에 총연장 60여㎞, 역은 70여 개에 불과하다. 파리(16개 노선·245㎞·321역), 런던(11개 노선·402㎞·272역)보다 뒤처지고 한국의 수도권 광역철도(24개 노선·1302㎞·656역)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역사 도시로 유명한 그리스 아테네, 튀르키예 이스탄불, 일본 교토, 한국 경주 등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