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FC바르셀로나(스페인)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독일)의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열린 바르셀로나 캄노우는 ‘원더 키드’ 라민 야말(18)의 플레이에 열광하는 수만 명의 팬들로 북적였다. 팬들은 리오넬 메시로 상징되는 ‘바르셀로나 10번 계보’를 물려받은 야말의 유니폼을 펄럭이며 사인을 요청했지만, 야말은 이들을 무심히 지나쳤다. 그가 단순히 팬서비스에 인색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그 배경엔 ‘사인 비즈니스’가 자리하고 있다.
◇ “사인 받으려면 돈 내”
야말은 지난 10월부터 팬들의 사인 요청을 모두 거부하고 있다. 야말의 소속사가 그의 사인이 들어간 굿즈를 출시해 독점적으로 판매하려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야말의 사인을 받은 팬이 많아지면, 앞으로 출시할 굿즈의 희소성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사인 금지령’을 내렸다. 야말의 사인이 들어간 유니폼과 축구화 등을 갖고 싶으면 돈을 지불하라는 것이다. 바르셀로나 구단도 소속사와 합의해 한정된 수량의 사인만을 확보했다고 한다.
축구계에선 18세에 불과한 선수가 기량을 쌓는 데 집중하기보다 상업적 마케팅에 지나치게 치중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많은 축구 팬들은 천하의 메시나 호날두도 대놓고 ‘사인을 받으려면 돈을 내라’는 태도를 보인 적은 없다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스포츠 스타들이 개인 브랜드를 만들어 상업 활동을 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지만, 팬 서비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인을 철저히 돈벌이에 이용하는 사례는 야말이 사실상 처음이란 지적도 나온다. 야말은 최근 레알 마드리드와의 라이벌전에서 스페인 대표팀 선배 다니 카르바할과 불필요한 언쟁을 벌이는 등 성숙하지 못한 태도로 자주 논란을 빚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사인을 받고 이를 되팔아 이득을 취하는 업자들, 이른바 ‘사인 사냥꾼(Autograph Hunter)’의 존재가 문제로 지적된다. 친필 사인이 담긴 스포츠 카드나 유니폼이 고가에 거래되면서 돈을 벌 목적으로 선수들을 파파라치처럼 따라다니는 사인 사냥꾼이 늘어났고, 그 결과 선수들 역시 선의로만 사인을 해주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실제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현역 시절 자신의 사인이 담긴 물품의 가치가 천문학적으로 치솟고, 이에 따라 광적인 수집가가 몰려들면서 사인 요청을 대부분 거부했다. 타이거 우즈는 골프공에는 웬만하면 사인을 해주지 않는다. 사인이 담긴 물품 중 가장 고가에 거래되는 품목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선수는 사인을 되팔 가능성이 적은 어린이들에게만 사인을 해주거나, 경기장이 아닌 곳에서는 사인을 거부하는 본인만의 기준을 세우기도 한다.
◇ “테스트 통과하면 해줄게”
NFL(미 프로풋볼) 스타 애런 로저스는 사인 사냥꾼을 가려내기 위해 테스트를 진행한 경우다. 그는 지난 7월 한 자선 골프 행사에서 20년 전인 그린베이 패커스 시절 경기 티켓에 사인해 달라는 한 남성을 만났다. 그러자 로저스는 당시 상대 팀과 스코어 등을 물었고, 그 남성이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하자 “너는 ‘사인만 좇는 사냥개(Autograph Hound)’”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레알 마드리드 골키퍼 티보 쿠르투아는 자신이 사인하는 모습을 촬영해 그 ‘인증 샷’과 함께 사인 유니폼을 파는 사람을 찾아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손흥민은 토트넘 시절 판매업자로 보이는 남성이 사인을 한 번 받고 또 다시 사인을 요청하자 단호히 거절했다.
국내에선 한때 일부 프로야구 선수들이 어린이 팬의 사인 요청에도 응하지 않는 장면이 잇따라 노출되며 팬 서비스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대부분 선수가 팬들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분위기다. ‘국민 타자’로 불린 이승엽 전 두산 감독은 현역 시절 “사인을 많이 하면 희소 가치가 떨어진다”고 말했다가 팬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는데, 이후 “매우 잘못된 발언”이라고 인정하며 “호텔 방 앞이나 지하 주차장 등 사적인 공간에 무분별하게 찾아오거나 사인을 중고 거래하는 분들을 겨냥한 발언이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