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의 핵심 지지층인 매가(MAGA)의 기조와 상반되는 IT 기업 친화 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그의 지지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AI 산업을 제한하는 주(州) 정부 법률을 무력화하는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조치에 따라 미 법무장관은 미국의 AI 경쟁력에 부합하지 않는 주법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주정부가 규제를 유지할 경우 연방 인프라 사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할 수 있게 된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AI 관련 대규모 투자가 미국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50개 주에서 각각 다른 승인을 50번 받아야 한다면 이는 불가능하다. 승인이나 거부의 출처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공화당 지지층은 혼란에 빠졌다. MAGA 지지기반인 노동자들은 AI가 일자리를 자동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데, AI 산업을 촉진하는 행정명령으 노동자들을 향한 당의 메시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일부 MAGA 진영에서는 온라인에서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주 법률이나 에너지 요금 상승 우려 속에서 데이터센터를 규제하려는 주 법률까지도 행정부가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지사들과 의회 의원들, 보수 성향의 옹호 단체들은 백악관에 전화를 걸어 이번 행정명령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공화당 소속인 플로리다 주지사 론 디샌티스와 보수 논객 스티븐 K. 배넌은 소셜미디어 X 게시글과 팟캐스트를 통해 해당 행정명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일 발표한 엔비디아의 고성능 인공지능(AI) 칩 ‘H200’의 대중 수출 허용 조치 역시 MAGA 진영의 반발을 불러왔다. H200은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 ‘블랙웰’보다 한 세대 이전 모델이지만, 현재 중국에 수출되는 H20보다 성능이 약 여섯 배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내에서는 중국으로의 칩 수출이 미국의 AI 산업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상 엔비디아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미국 하원 미·중 경쟁 특별위원회의 존 물레나 위원장(공화당)은 행정부에 반발하는 서한을 보내며 문제를 제기했다. 물레나 위원장은 최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중국 기업들에 최첨단 칩 판매를 승인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재임 시절 확보했던 중요한 전략적 우위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잇따라 내놓은 AI 관련 정책의 배경에는 실리콘밸리 거물들의 막강한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은 백악관 연회장 프로젝트에 거액을 기부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활동에 자금을 대고 있다. 익명의 한 관계자는 WP에 “전국의 수백만 표가 공화당이 결코 이기지 못할 지역에 있는 수천 명의 벤처캐피털리스트와 기술 부호들의 표와 맞바뀐 것처럼 느껴진다”고 전했다.
WP는 “트럼프의 AI 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그를 두 번째로 백악관에 입성시키는 데 기여했던 포퓰리스트들과 기술 기업가들 사이에 잠재된 갈등을 반영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1일 서명한 행정명령은 막강한 영향력과 부를 지닌 기술 기업 동맹들이 일주일 만에 거둔 두 번째 주요 승리였다”고 평가했다.
MAGA 진영의 분열 조짐에 백악관은 수습에 나섰다. 쿠시 데사이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미래의 최첨단 기술을 미국이 제공하도록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이해관계는 미국 국민의 최선의 이익 뿐이라고 밝혔다.
데이비드 색스 백악관 AI·암호화폐 책임자와 스리람 크리슈난 백악관 AI 정책 선임자문관 역시 로비스트들과 주지사들, 그리고 그들의 참모들에게 이번 제안이 주(州) 권리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간선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MAGA 진영의 분열이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백악관이 서둘러 수습에 나선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