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과 캄보디아 간 국경 분쟁이 단순 교전을 넘어 공군력까지 동원된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양측 군인과 민간인 등 13명이 사망한 가운데, 태국 공군 소속 F-16 전투기가 9일(현지 시각) 캄보디아 국경 지역의 카지노 건물을 폭격했다. 방콕포스트와 타이PBS 등 태국 주요 언론은 군 당국을 인용해 “해당 건물이 겉으로는 카지노 간판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드론 작전 통제소로 운용됐다”는 주장을 보도했다.
태국군은 이 ‘가짜 카지노’ 지붕에서 자국 드론을 무력화하는 전파 교란 안테나를 식별했으며, 해당 시설이 군사 및 범죄 목적으로 전용되고 있다고 판단해 시설의 80%를 괴멸시켰다고 밝혔다. 태국은 이 밖에도 캄보디아 영내로 진입, 무기 저장고로 사용돼온 카지노도 폭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태국군의 이번 타격은 국경 지역에 독버섯처럼 퍼진 ‘범죄 단지’를 겨냥한 정밀 작전으로 풀이된다. 동남아 지역 온라인 사기 조직을 추적하는 전문 단체 ‘사이버스캠 모니터(CyberScam Monitor)’는 X를 통해 “태국군이 국경 지대의 보이스피싱 범죄 단지를 집중 타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단체는 그간 “지난 12개월 동안 태국·캄보디아 국경 지역에서 사기 범죄 단지가 급격히 확장됐다”며 캄보디아 오스막(O’Smach) 등 카지노 단지들이 실제로는 납치·감금·강제 노동이 자행되는 범죄 소굴이라고 지적해 왔다.
이번 사태는 사소한 총격전으로 시작됐지만 민간 시설이 공격받으며 걷잡을 수 없이 확전됐다. 지난 7일 오후 2시 태국 시사껫주 국경 지역에서 캄보디아군이 태국군 초소를 향해 소화기 사격을 가해 태국 군인 2명이 부상당하면서 무력 충돌이 시작됐다. 태국군이 즉각 대응 사격에 나섰으나 캄보디아 측은 RPG 로켓포까지 동원했고, 8일 새벽에는 전선을 확대해 태국 부리람 공항과 수린주 프라사트 병원 등 민간 시설을 포격했다. 이 과정에서 태국 군인 1명이 사망했다.
태국 정부는 ‘강 대 강’ 대치 속에서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고 있다. 아누틴 찬비라쿨 태국 총리는 8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소집 후 TV 연설에서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No negotiations)”고 못 박았다. 그는 “그들이 먼저 시작했고,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준 것”이라며 사실상 국지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윈타이 수바리 태국 육군 대변인은 “단순한 위협 사격이 아니라 살상 의도가 확인됐다”며 “캄보디아의 로켓 기지와 화력 지원 시스템을 괴멸시키는 것이 작전의 최종 목표”라고 강조했다.
반면 수세에 몰린 캄보디아는 슬며시 대화 제스처를 꺼내 들었다. AP통신에 따르면 훈 마넷 캄보디아 총리의 최측근 자문역인 수오스 야라는 10일 “양측이 동의만 한다면 당장 1시간 이내에도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며 긴급 회담을 제안했다. 그는 “우리는 영원히 이웃으로 살아야 한다. 이건 너 죽고 나 죽는 게임(Lose-lose game)”이라고 호소했지만, 태국 외무부는 “외부의 중재는 필요 없다. 캄보디아가 먼저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며 일축했다.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랑했던 휴전 합의가 물거품이 됐다는 뜻이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충돌을 단순 영토 분쟁을 넘어 미·중 패권 경쟁의 대리전 양상으로 분석한다. 미국이 최근 대중국 견제 차원에서 대표적 친중 국가인 캄보디아를 회유하려 공을 들이자, 미국의 오랜 우방인 태국이 소외감을 느끼며 과잉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10일 긴급 성명을 내고 “즉각적인 전투 중단”을 촉구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 카드조차 먹히지 않는 상황이라 미국의 중재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