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집권 이후 25년째 러시아를 이끌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73) 건강이상설이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끊이지 않는 푸틴 건강 관련 논란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러시아 권력 구도와 직결된 핵심 변수다. 크렘린궁은 매번 “가짜 뉴스”라며 일축하지만,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10일(현지시각)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등은 지난 6일 러시아 사마라의 한 체육관 행사에 참여한 푸틴 대통령이 농구 코트 옆에 서서 어색하게 주먹을 쥔 채 연설하는 모습을 지적하면서 “오른 손이 부어오르고 고통스러워 보이며, 정맥이 심하게 튀어나왔다”고 분석했다. 안톤 게라셴코 전 우크라이나 내무부 장관 고문은 X(옛 트위터)에 “푸틴 손이 팔꿈치까지 피로 물든 것 같고, 정맥도 지나치게 불거져 있다”고 적었다.
푸틴은 몇 년 전부터 손에 검은 반점, 정맥 주사 흔적 같은 이상 징후가 포착된 바 있다. 장기적이고 점진적인 손가락 마비나 관절 움직임 이상, 손 붓기 등은 파킨슨병 같은 신경계 질환의 대표적인 징후다. 파킨슨병은 무함마드 알리가 앓던 병으로, 운동 능력이 천천히 소실된다. 런던 임페리얼칼리지 의대 사이먼 루이스 교수는 BBC 인터뷰에서 푸틴 증상에 대해 “노화로 인한 정맥 돌출이나 혈압 상승 등 자연 증상일 가능성이 높지만, 반복적 근경직·떨림은 신경계 질환 신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푸틴 건강에 대한 의혹은 1인 독재 체재와 맞물려 집권 이후 꾸준히 제기되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부터 급증했다. 의혹 가운데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측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증폭된 면이 있다. 그러나 이번 사례처럼 실제 카메라에 찍히거나 사람들 눈에 띄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가령 침공 직후였던 2022년 4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회담에서 푸틴은 12분 내내 테이블 모서리를 꽉 잡고 있었다. 발도 초조한 듯 계속 떨었다. 이 모습 때문에 파킨슨병 초기 증상이라는 의혹이 돌았다. 2023년 10월 영국 매체들이 푸틴이 심장마비 상태로 침실에서 발견되어 심폐소생술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지난해에도 10월 러시아 군부대 방문 시 손등에 정맥주사 자국으로 의심되는 검은 반점이 포착됐다. 그 직후 11월에는 2주간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아 입원설까지 돌았다.
그럴 때마다 크렘린궁에선 매번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즉각적이고 강경한 부인을 반복했다. 이번에도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 건강은 훌륭하다(excellent)”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푸틴 스스로도 그동안 건강과 생명 연장에 대한 강한 욕망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지난 9월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인간 장기를 계속 이식할 수 있다. 오래 살수록 더 젊어진다”며 “과거엔 70세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었지만, 요즘 70세는 아이에 불과하다. 혁신 기술이 우리를 150세까지 살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이후 러시아 국영 매체 보도에서 삭제·편집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을 키웠다.
‘강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는 푸틴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핵심 기반이다. 건강이상설은 이 기반을 흔드는 시도다. 이 때문에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건강이상설이 드러날 때마다 세계 정세 전체를 흔드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정부가 푸틴 건강에 대한 의혹을 서방과 우크라이나가 벌이는 정보전의 일환으로 간주한다고 평가했다.
푸틴은 지난 25년 동안 1인 절대 권력 체제를 구축했다. 만약 푸틴이 갑자기 유고(有故) 상태에 빠지면, 핵보유국 러시아 권력 체제는 거대한 혼돈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헌법 92조 3항은 대통령이 직무 수행 불능 상태일 때, 총리가 90일간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도록 규정한다. 법대로라면 현 총리 미하일 미슈스틴이 권력을 자동 승계한다. 그러나 미슈스틴 총리는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는 기술 관료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전문가를 인용해 푸틴이 사라지면 러시아군, 정보기관(연방보안국·FSB), 사법기관 등 힘 있는 조직 출신 강경파 엘리트 집단에서 극심한 권력 투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내정은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 향방도 예측 불가능한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