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화필리조선소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조선업 부활’ 전략의 핵심 축으로 떠오르면서 한화가 대규모 투자에 나섰지만, 최근 원자력 잠수함 건조 가능성까지 더해지며 사업의 난도가 크게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 “미국에서 가장 야심 찬 조선 프로젝트가 더 어려워졌다”고 평가하며, 상선·군수 지원선 중심이던 기존 계획에 원잠 건조라는 초고난도 과제가 얹히면서 리스크가 급증했다고 전했다.
WSJ는 동시에 필리 조선소가 트럼프식 ‘미국 조선업 부활(MASGA)’ 전략의 가장 중요한 거점이 됐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화 인수 이후 조선소가 빠르게 정비되고, 인력·설비 투자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수십 년 만의 가장 큰 산업 재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고 긍정 평가했다. 실제로 조선소 내 골리앗 크레인이 새 단장을 마치고, 도장 시설 확충, 도크 2곳의 신조 투입 등 물리적 변화가 눈에 보인다는 설명이다.
한화는 지난해 적자를 내던 필리 조선소를 1억달러(약 1456억원)에 인수한 뒤 시설 현대화를 위해 50억달러(약 7조2840억원) 투자를 선언했다. 목표는 연 1척 수준인 생산 능력을 연 20척으로 끌어올리고, 수천 명의 인력을 새로 채용하며, 대형 크레인·로봇·도장 시설을 전면 교체해 사실상 조선소를 다시 만들다시피 하는 것이다. 미국의 상선 건조 비율이 세계의 1%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한국이 가진 대규모 조선 시스템을 미국에 이식해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 하겠다는 구상이다.
WSJ는 트럼프의 조선업 부흥 전략이 한국의 기술·경험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한화 필리 조선소가 그 ‘시범 모델’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평가했다. 태미 더크워스 미 상원의원(민주)은 “미국이 충분히 빠르게 배를 건조하려면 한국 같은 조선 강국과의 협력이 필수”라고 말했다. 여름에는 한화해운 자회사가 중형 탱커 및 LNG선 12척을 발주해, “수십 년 만에 미국에서 나온 가장 큰 단일 선박 발주”가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필라델피아에서 한국 해군용 원자력 잠수함까지 건조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원잠은 한국도 아직 건조 경험이 없으며, 미국은 원자력 추진 기술을 동맹에도 엄격히 통제해 온 분야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조차 “필리 조선소는 기술·인력·시설 측면에서 상당한 한계가 있다”며 “국내 생산이 더 빠를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시했다. 원잠 건조를 위해서는 원자로 통합, 극저소음 설계, 방사능 안전 기준, 군사 보안 승인 등 초고난도 절차가 필수이며, 미국 내부에서도 상당한 기술 공유가 필요하다.
WSJ에 따르면 인력 문제도 큰 장애물이다. 필리 조선소 인력 중 한국인은 10% 미만이며, 미국 내 숙련 용접·배관·원자력 품질 인증 인력은 부족하다. 도제 프로그램 지원자가 세 배로 늘었지만, 원잠 사업을 감당하려면 수천 명 규모의 고급 기술 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미국에 사실상 붕괴된 군용·원자력 선박 공급망을 재구성해야 하는 점도 부담이다.
정치적·제도적 리스크도 존재한다. 미국 법상 군용·상업용 선박은 원칙적으로 해외 건조가 금지돼 있어 한국과의 역할 분담은 의회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 기술 이전, 지역 정치, 노조 반발, 예산 심사 등이 모두 장기 변수다.
WSJ는 “필리 조선소가 성공하면 미국의 다른 조선소 회생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그만큼 정치적 지속력·막대한 자본·대규모 숙련 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상선 증산과 조선소 현대화만으로도 수십 년 만의 가장 큰 도전인데, 여기에 원잠이라는 국가급 프로젝트까지 겹치면서 난도가 급상승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