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전닝을 추모하기 위해 베이징 바바오산 앞에 24일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시나뉴스

24일 오전 중국 최초의 노벨상(물리학) 수상자인 고(故) 양전닝(楊振寧·103)의 영결식이 베이징 바바오산(八寶山) 혁명공묘 예당(禮堂)에서 열렸다. 영결식 시작 한 시간 전부터 흰 국화와 양전닝의 사진을 든 시민들이 몰려와 주차장까지 수십 미터의 행렬이 이어졌다고 신징보(報)는 전했다. 지난 18일 별세한 최고 과학자를 떠나보낸다는 소식을 관영 매체에서 보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몰려든 것이다. 중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모옌 작가는 ‘양전닝 선생 애도’란 제목의 시에서 “그는 신선처럼 내려온 손님, 돌아가며 백세(百世)에 향기 남기네”라고 썼다.

바바오산은 중국의 지도자와 국가 원로들이 묻히는 상징적 장소다. 일반 시민의 조문을 자유롭게 허용한 것도 이례적이다. 중국 지도부가 국가 지도자급 예우를 갖춰 과학자를 대하는 국가의 태도를 국민에게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베이징 바바오산에서 열린 양전닝의 영결식 현장./칭화대

수도권 주요 대학과 학술 기관들도 일제히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 칭화대는 18~24일 과학관 1층에 추모실을 설치해 시민과 학생들이 헌화하고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했다. 홍콩중문대도 23~30일까지 운영하는 조문 공간을 대학 도서관 역사관에 마련했다.

1922년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에서 태어난 양전닝은 1942년 서남연합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1944년 칭화대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45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시카고대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를 거쳤다. 1956년 리정다오와 함께 ‘패리티 비보존 가설’을 발표해 이듬해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당시 “물리학의 기본 개념이 실험으로 뒤집혔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혁명적 업적이었다. 1954년 미국의 로버트 밀스와 함께 제창한 ‘양 밀스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필적하는 기초 이론으로 평가된다.

과학기술 인재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자산으로 여겨온 중국에서 노벨상을 받은 양전닝은 ‘국보’ 대접을 받는다. 그는 2003년 미국에서 귀국한 뒤 칭화대에서 후학을 길렀고, 2015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중국 국적을 회복했다. 이 시기는 중국이 해외 석학 영입에 힘을 쏟기 시작한 때로, 컴퓨터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 수상자 야오치즈 칭화대 교수도 비슷한 시기에 중국 국적을 얻었다.

양전닝이 몸담았던 칭화대는 “당과 국가의 지도자, 유족과 생전의 친구, 칭화대학 전원과 사회 각계 인사들이 양전닝을 송별했다”고 전했다. 중국 지도부가 고인에게 국가급 훈장이나 명예 칭호를 추서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