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에서 인공지능(AI) 산업과 관련한 투자 열풍이 과열되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AI 관련 기업 주가와 투자 지출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자, 시장이 거품 국면에 진입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 있는 황소상. 불(bull·황소)마켓은 상승장을 상징한다. /로이터=연합뉴스

20일(현지 시각) 야후파이낸스 등 외신에 따르면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자산 가격 상승이 우려되는 범주에 들어섰다”며 “가격이 오르면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거품 영역에 진입한 자산이 많다”며 “이는 곧 손실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경고했다.

이 같은 발언은 투자자들의 ‘AI 낙관론’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월가의 불안 심리를 반영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발표한 글로벌 펀드매니저 설문에서 응답자들은 사상 처음으로 AI 주식 버블을 세계 최대의 위험으로 꼽았다. 이 조사에 응답한 200여 명의 펀드매니저는 평균 현금보유율이 3.8%로 떨어졌다고 답했는데, 이는 위험 선호가 극단으로 높을 때 관측되는 수준이다.

기관투자자들의 포지션에서도 과열 신호가 나타났다. 리서치 업체 데이터트렉리서치에 따르면 대형 기관투자자들은 5개월 연속 위험자산 비중을 확대했고, 업종 간 주가 상관관계는 강세장 출발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투자심리가 과도하게 낙관적일 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AI 투자 경쟁은 기업들 사이에서도 치열하다. 구글은 인도에 150억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기로 했고, 엔비디아의 경쟁업체인 AMD는 오라클과 새로운 칩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월마트는 AI 기반 소매 도구 강화를 위해 오픈AI와 협력에 나섰다. 오픈AI 역시 브로드컴·AMD·엔비디아 등과 잇달아 계약을 맺으며 공급망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CNN에 따르면 이러한 AI 투자 붐은 이미 ‘세계 최대 거품’ 수준에 근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리서치업체 영국 매크로스트래티지 파트너십의 줄리앙 가란 시장 분석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AI 산업은 인류가 경험한 어떤 거품보다 크고 위험한 자본 배분 오류”라며 “현재 AI 열풍은 닷컴 버블보다 17배, 2008년 부동산 거품보다 4배 크다”고 주장했다.

엔비디아와 오픈AI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가란은 “AI 생태계는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며 “엔비디아만 폭발적인 수익을 내는 반면, 데이터센터·대규모언어모델(LLM) 개발사·스타트업 대부분은 적자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AI 산업은 투자자 자금으로 연명하는 ‘영구적 자금조달 투어’에 가깝다”며 “투자금이 마르면 산업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LLM이 가진 기술적 제약도 언급했다. “LLM은 결국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통계적 예측 도구에 불과하다”며 “AI 기업들이 주장하는 창의적 혁신은 과대평가돼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픈AI의 GPT-4 이후 대규모 성능 향상이 이뤄지지 않았고, 시장은 새로운 기술의 성공을 결정짓는 핵심인 ‘킬러 애플리케이션’의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월가의 증권 중개회사인 존스트레이딩의 마이클 오루크 수석전략가도 “AI 버블 한가운데 있다”며 “1조5000억달러 규모의 AI 구축 계획은 기업 실적과 괴리된 투자의 단면”이라고 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기술의 미래에만 집중한 나머지 현실과의 단절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분석가들은 이번 AI 랠리가 단순한 광풍이 아니라 기술 확신의 반영이라고 본다. 온라인 투자플랫폼 이토로의 라레 아코너 글로벌 시장 분석가는 “AI 버블이라 부르기 어렵다”며 “투자자들은 실행보다 스토리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지만, 이는 완벽한 가격 책정 과정의 일부”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투자심리는 지나치게 들뜬 국면이 아니다”며 “대형 기술주들이 여전히 견조한 재무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장 전문가들은 결국 향후 AI 대표 기업들의 실적이 거품 여부를 가를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본다. 리서치 기관 데이터트렉의 니콜라스 콜라스 공동창립자는 “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의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낙관론이 급속히 꺼질 수 있다”며 “AI 광풍이 진짜 혁신으로 이어질지, 닷컴 버블의 재연으로 끝날지 조만간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