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3일부터 열린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에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했다. 고위급 대표단 파견은 2018년 리용호 당시 외무상 이후 7년 만이라는 점에서 북측이 전달할 메시지뿐만 아니라 평양에서 미국 본토에 도착한 이들이 대외적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도 관심이 쏠렸다. 유엔총회장에서 약 한 시간가량 지켜본 북한 대표단은 국제 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된 모습이었다. 한국과 미국 등 자유 진영에 맞서 북한과 공조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중국·러시아도 인사를 건네지 않았고, 약 16분간 동안 이어진 연설 내내 단 한 차례도 박수를 받지 못했다.
유엔총회 고위급 주간 마지막 날인 29일 북한의 연설 순서는 10번째였다. 평소 총회장 안에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주유엔 북한 대표부는 오전부터 자리를 지켰다. 오전 10시 52분 자리에 앉아 있던 대표부 관계자들이 갑자기 자리를 떠났고, 김선경 외무성 부상과 김성 유엔 대사가 총회장 안으로 들어와 그 자리에 앉았다. 김 부상은 외무성에서 국제기구를 담당하는 차관급 인사다.
자리에 앉은 뒤 대사는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키면서 김 부상에게 무언가를 설명했다. 연설을 담당한 김 부상에게 김 대사가 입장 절차 등을 설명하는 듯했다. 오전 10시 55분 유엔 사무국 관계자가 북한 대표단 자리에 찾아가 연설을 할 김 부상에게 대기실로 갈 것을 권유했다. 김 대사는 이 관계자를 보고 밝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늘 굳은 얼굴을 하던 김 대사가 웃음을 보인 건 굉장히 이례적이었다.
연설 차례를 기다리는 북한 대표단 자리 뒷줄에는 4명이 앉았다. 원래 3명까지 앉을 수 있기 때문에 남은 한 명이 옆에 붙은 체코 대표부 자리에 말없이 앉았다. 체코 대표부 관계자는 흘끗 그들을 쳐다봤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뒷줄에 앉은 북한 대표단 관계자들은 앳된 얼굴이었다. 한 관계자는 네팔 대표단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전통 모자를 쓰고 지나가자 신기한 듯 눈을 떼지 못하고 웃으면서 쳐다봤다.
오전 11시 48분 김 부상이 연단에 오르자 북한 대표단은 큰 소리로 손뼉 쳤다. 북한 대표단 왼쪽 앞좌석에 앉은 캐나다 대표부 관계자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기도 했다. 김 부상은 “의장 선생, 사무총장 선생”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유엔총회 의장과 사무총장을 북한식으로 부르는 단어다. 그는 연설에서 서방의 비핵화 요구에 대한 전면 거부와 함께 핵무기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강력한 입장을 밝혔다. 연설 내내 다른 국가들은 단 한 차례도 손뼉을 치지 않았다. 심지어 북한 대표단이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팔레스타인을 주권 국가로 인정한다고 말했을 때도 박수는 나오지 않았다. 현재 상당수 유엔 회원국은 팔레스타인을 주권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부상은 “우리나라를 존중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나라들과 다방면적인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면서 약 16분에 걸친 연설을 끝냈다. 대표단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총회장 밖으로 나갔다. 7년 만에 평양에서 온 고위급 대표단의 국제 무대 외출이 그렇게 끝났다.
북한은 이번 뉴욕 방문에서 ‘정상 국가’처럼 보이기를 원하며 양자 회담을 갖기도 했다. 김 부상은 25일 뉴욕에 도착한 뒤 우호국 외교 관계자들과 연달아 만났다.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부 장관은 자신의 X(옛 트위터)에 김 부상과 악수하는 사진을 올렸다. 김 부상은 베네수엘라와 니카라과 외교장관과도 각각 회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동북 아프리카에 있는 에리트레아 외무장관과도 만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