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설계자이자 ‘영국판 트럼프’로 불리는 나이젤 패라지 영국개혁당(개혁당) 대표가 집권 시 불법 이주민 60만명을 추방하겠다는 초강경 이민 정책을 발표했다.
BBC 등에 따르면 패라지 대표는 26일(현지시각) 영국 옥스퍼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 회복 작전(Operation Restoring Justice)’이라는 이름의 이민 정책을 공개했다. 이 정책은 5년 임기 내 불법 이주민 최대 60만명을 추방하고, 유럽인권조약(ECHR)에서 탈퇴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이 계획을 위해 영국 인권법을 폐지하고, 유엔난민협약 등 망명 신청자 권리를 보장하는 모든 국제조약 적용을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불법으로 입국하는 모든 사람을 여성, 아동 가릴 것 없이 즉시 구금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패라지 대표는 단순한 극우 정치인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그가 이끄는 개혁당은 지난 7월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30% 안팎을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집권 노동당과 제1야당 보수당을 모두 제친 지지율 1위다. 기세가 갈수록 거세지자 최근에는 보수당(토리) 중진 의원들까지 잇따라 개혁당으로 합류했다. 보수당과 중도좌파 성향 노동당으로 나뉘었던 영국 정치 지형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이다.
개혁당 급부상 뒤에는 영국 사회에 누적된 반(反)이민 정서가 자리한다. 영국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따르면 지난달 영국 유권자 최대 관심사는 경제(30%)를 넘어 이민(42%) 문제로 나타났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이민자 문제가 더 시급하다고 느낄 만큼 영국 사회 이민자 갈등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지난해 영국 내 망명 신청자는 10만8100명으로 전년보다 20% 가까이 늘었다. 대다수가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이란·방글라데시 출신이었다. 올해 6월 기준 망명 신청 심사를 기다리는 대기 건수는 22만4742건에 달한다. 개혁당은 서류 없이 불법 체류하는 사람까지 더하면 실제 불법 이주민이 100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작은 보트를 타고 프랑스에서 영불해협을 건너 영국에 불법 입국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올해 들어서만 2만8288명이 적발됐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46% 늘어난 역대 최대치다. 키어 스타머 총리가 이끄는 현 노동당 정부는 밀입국 조직 소탕과 망명 신청 절차 가속화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사이 이달 중순 영국 런던 외곽 에핑 지역에서는 에리트레아 출신 망명 신청자가 10대 소녀에게 접근해 강제로 입맞춤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은 영국에서 반이민 시위대와 이들을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충돌하는 불쏘시개가 됐다. 패라지 대표는 이 지점을 파고들어 유권자 불안감을 자극했다. 그는 “나라 전체가 절망과 분노로 뒤섞인 상태”라며 “사회 무질서에 대한 대규모 위협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했다.
개혁당은 집권시 아프가니스탄, 이란, 에리트레아처럼 망명 신청자가 주로 나오는 국가와 송환 협정을 맺겠다고 발표했다. 영국으로 망명을 받아들이는 대신, 본국으로 다시 보내겠다는 뜻이다. 대신 송환국에는 협조한 대가로 수십억 파운드를 제공한다. 그 밖에 하루 5편 전세기 운항을 통한 대규모 집단 추방안도 내놨다. 개혁당은 이 계획 실행을 위해 5년간 100억 파운드(약 17조원)를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패라지는 망명 요청자들을 향해 “만약 당신이 영국에 불법으로 온다면, 구금 후 추방될 것이며 절대 머무를 수 없다”며 “전원 구금·송환을 실행해야 보트가 단숨에 멈춘다”고 덧붙였다.
반대진영과 인권단체는 “영국이 러시아·벨라루스와 다를 바 없는 인권 아웃사이더가 될 것”이라며 패라지 계획이 비현실적이라 반박했다. 영국이 유럽인권조약을 탈퇴하면 유럽 국가들과 맺은 각종 안보·무역 협정에도 연쇄적인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비용도 개혁당 예산을 웃돌 가능성이 크다. 개혁당은 5년간 100억 파운드를 예상했지만, 우파 성향 영국 싱크탱크 이주통제센터(Centre for Migration Control)는 비슷한 계획에 이보다 5배 가까이 많은 475억 파운드(약 81조원)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아프가니스탄, 이란, 에리트레아처럼 영국이 그동안 적대관계로 지냈던 국가들과 을(乙) 위치에서 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것도 난제다.
전문가들은 영국이 ‘이민자 관용’이라는 오랜 전통을 버리고 미국처럼 강경 노선으로 돌아서면, 유럽 전역 반이민 정서 확산을 촉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과거 영국 정치권에서는 ‘대규모 추방’과 같은 급진적 주장이 금기시됐다. 국제 사회도 오랫동안 ‘박해받을 위험이 있는 나라로 난민을 강제 송환해서는 안 된다’는 농-르풀망(non-refoulement) 원칙을 지켜왔다. 그러나 이제 이민 강경책은 영국 주류 정치 담론으로 떠올랐다. 옥스퍼드대 이민연구소 피터 월시 선임연구원은 로이터에 “개혁당 정책이 실행되면 망명 신청자를 고문 위험이 있는(at risk of torture) 국가로 돌려보내게 될 것”이라며 “이는 최근 수십 년간 유럽에서 가장 급진적인 시도”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