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유력 야당 대선주자였던 미겔 우리베 투르바이 상원의원이 11일(현지시각) 14세 소년에게 피격을 당한지 두 달만에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전문가들은 반세기 넘게 이어진 내전과 ‘마약과의 전쟁’이 남긴 복합적인 상처가 어떻게 한 나라 현재와 미래를 발목 잡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평했다.

11일(현지시각) 스페인어권 최대 매체 엘 파이스는 39세로 생을 마친 우리베 의원 죽음을 전하며 “장래가 촉망되던 한 정치인의 비극을 넘어, 콜롬비아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구조적 문제와 부패한 정치 시스템, 그리고 대물림되는 개인적 아픔과 정교하게 연결돼 있다”고 했다.

보수 성향 중도민주당 소속으로 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우리베 의원은 마약 카르텔에 대한 강경 대응을 촉구해 온 인물이다. 그는 지난 6월 7일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한 공원에서 유세 연설을 하던 중 총에 맞았다. 총을 쏜 범인은 14세 소년으로, 미국서 밀반입한 총으로 우리베 의원 머리를 향해 두 발, 무릎에 한 발을 쐈다. 현지 수사 당국은 마약 밀매 세력이 10대 청소년을 고용해 범행을 사주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2025년 6월 15일 콜롬비아 칼리에서 사람들이 우리베 의원 사진을 들고 '침묵의 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콜롬비아 전문가들은 현재 국가를 위협하는 폭력의 근원이 크게 두 갈래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우선 콜롬비아에는 다른 나라에서 찾기 어려운 ‘소년 암살자(시카리오)’가 존재한다. 1980년대 악명 높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사회 안전망에서 소외됐거나, 절망에 빠진 청소년들을 유혹해 값싼 소모품으로 범죄에 활용했다. 조직 근거지 메데인이나 보고타 외곽 빈민가(comuna)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잘 차려입고, 오토바이를 탄 채 총을 쏘는 시카리오는 공포의 대상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극심한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시카리오는 끊임없이 생겨난다. 우리베 의원을 저격한 범인 역시 14세 시카리오였다. 콜롬비아 현지 매체 원(One)은 “국가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처참하게 붕괴했는지를 보여준다”며 “가족 생계를 책임지거나, 폭력으로라도 존재를 증명하려는 청소년들의 왜곡된 욕망을 범죄 조직이 착취하고 있다”고 했다.

미겔 우리베 상원의원(오른쪽)이 2025년 5월 보고타에서 콜롬비아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가 추진한 정부 노동 개혁 국민투표에 대한 상원의 부결 투표 이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또 다른 축은 정규군 출신 ‘암살 용병’이다. 콜롬비아는 2000년대 미국으로부터 마약 소탕전 능력을 갖춘 정규군을 양성한다는 명목으로 수십억 달러를 지원받았다. 이들은 정글과 도시를 넘나드는 특수 작전 경험을 쌓고, 세계 최고 수준 대(對)게릴라전 능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능력과 훈련 강도에 비해 콜롬비아군이 주는 보수는 턱없이 적었다. 전역 후 콜롬비아 사회에서 이들이 할 만한 일자리도 드물었다. 결국 대규모로 양성한 콜롬비아 정예 군 인력들은 본인들이 익힌 살상 기술을 국내외 범죄 조직이나 민간군사기업(PMC)에 팔았다.

2021년 아이티 대통령 조브넬 모이즈 암살 당시 대통령 관저에 침투해 작전을 실행한 핵심 인력 20여명이 콜롬비아 특수부대 출신들이었다. 또 2023년 에콰도르 대통령 선거 유력 후보였던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 암살 사건 수사 결과, 에콰도르 경찰은 “암살에 직접 가담한 실행범들전원이 콜롬비아 국적자였다”고 밝혔다. 국가 안보를 위해 축적한 군사력이 요인 암살 사건에 쓰이면서 정규군마저 폭력을 전파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의미다.

콜롬비아 군인들이 2025년 7월 20일 보고타에서 콜롬비아 독립기념일을 기념하는 군사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건에 겹쳐진 우리베 의원 가족사는 비극의 깊이를 더한다. 우리베 의원 어머니는 1990년대 콜롬비아 사회에 큰 족적을 남긴 언론인 디아나 투르바이다. 그는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저지른 범죄를 끈질기게 추적하다 1991년 카르텔이 인터뷰를 가장해 파놓은 함정에 빠져 납치됐다. 이후 디아나는 콜롬비아 정부가 어설픈 구출 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총격전 중에 사망했다.

이 비극은 34년 만에 그의 아들에게 같은 모습으로 되풀이됐다. 콜롬비아 사회는 우리베 모자 죽음에 엄청난 충격과 슬픔을 느끼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이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엘리트 가문조차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이어 “과거 상처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현재를 집어삼키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고 덧붙였다.

야당 대선후보 암살이라는 난국 속에서 콜롬비아 정치는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콜롬비아 최초 좌파 대통령인 구스타보 페트로 현(現) 행정부는 사건 배후로 ‘국제 범죄 신디케이트’를 지목했다. 여러 관련 범죄조직이 담합해 국제적인 규모로 암살을 계획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콜롬비아 정부는 정작 우리베 의원 측이 피격 수개월 전부터 신변 위협을 호소하며 경호 인력 강화를 25차례나 요청했지만, 이 요청을 끝내 묵살했다. 심지어 피격 당일에는 기존 7명이던 경호 인력이 3명으로 줄었다는 사실까지 알려졌다. 정부가 정치적 반대 세력 안전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퍼지고 있다.

2025년 8월 11일 미겔 우리베 투르바이 상원의원 사망 이후, 대통령궁 카사 데 나리노에 콜롬비아 국기가 조기로 걸려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우리베 의원 죽음이 또 다른 정치 보복을 낳거나, 극단적인 안보 공약을 내세우는 포퓰리스트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미 콜롬비아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살인과 납치 같은 강력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2016년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최대 반군 게릴라 단체 파르크(FARC·콜롬비아 무장혁명군)와 평화협정을 맺고, 이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반군이 사라진 자리에 적절한 후속 조치가 이어지지 않았다. 이 자리에 생긴 ‘힘의 공백’은 파악이 어려운 신생 범죄조직들이 파고들었다. 비영리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지난해까지 콜롬비아에서 살인 범죄는 20.9%, 납치는 34.8% 뛰었다. HRW는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맺은 평화협정 이후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그 공백을 새로운 형태 폭력이 채우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