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중앙은행인 이스라엘 은행이 ‘하레디(Haredi)’라고 불리는 이스라엘의 유대교 초정통파 신자들이 군(軍)에 입대하지 않을 경우 전쟁 중인 이스라엘 경제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달 31일 로이터에 따르면, 이스라엘 은행은 이날 내놓은 ‘2023년 연례 보고서’에서 “지난해 10월 7일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 간 전쟁으로 군의 인력 수요가 불어났고, 군 복무 일수가 급증해 경제에 부담을 가중시켰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스라엘 은행은 “군인의 범위를 하레디로 확대하면 증가하는 국방 수요에 대응하면서 군 인력 운용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전체 인구의 13.5%에 달하는 하레디가 군 복무 대열에 합류할 경우 병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또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 예비군들이 전쟁 대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
남녀를 불문하고 군 복무가 의무인 것으로 유명한 이스라엘에서, 다른 때도 아니고 하마스와의 전쟁이 한창인 지금 일부 종교 분파의 병역 면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중앙은행까지 이 문제에 말을 보탠 배경은 무엇일까.
◇기도·공부 전념하는 하레디, 면제 당시 400명→지금은 128만명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당시부터 하레디 신자들의 병역을 면제해왔다. 하레디는 세속주의 문명을 거부하고 유대교의 전통 문화를 지키는 폐쇄적 공동체를 추구하는 유대교의 강경 분파다. 일상 생활의 대부분을 기도와 교리 연구에 보내려 한다. 반면 보수파, 개혁파 등 다른 분파는 정통 유대교의 일부 문화만 받아들이는 편이다.
가능한 많은 전세계의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불러들이기 위해 이스라엘은 전통 문화 보호와 함께 병역 면제 혜택을 약속하며 이들을 끌어모았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을 계기로 안전한 공동체 구축이 필요했던 하레디 상당수도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이스라엘 건국 당시만 해도 하레디 인구는 400여 명에 그쳤기 때문에, 이들의 예외적 병역 면제가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산(多産)을 강조하는 교리 등으로 세가 커지면서 2022년말 기준 하레디 인구는 128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3.5%에 달한다.
하레디 인구가 급증한 가운데, 남녀를 불문하고 군 복무가 의무화된 이스라엘에서 하레디에 대한 병역 면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만 18세 이상 이스라엘 국민은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해야 한다. 의무 복무 기간은 남성 32개월, 여성 24개월이다.
◇경제활동 참가율 55% 그쳐 “정부 지원금 받고 세금도 안내”
경제활동에 참가하지 않은 채 막대한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하레디가 경제 성장률의 제약이자 재정 부담 요인이라는 지적도 가세했다. 군 복무를 면제받는 하레디는 유년 시절 폐쇄적인 하레디 공동체 학교에서 수학, 과학 대신 교리를 배우고 주로 신학교로 진학한다. 로이터에 따르면, 하레디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5%에 그친다. “하레디가 군대도 가지 않고 일도 하지 않는다” 논란이 점차 커진 가운데, 2017년 이스라엘 대법원은 하레디 군 면제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하레디가 주축인 ‘샤스’ 등 보수 정당들의 거센 반발로 관련 법 개정은 지연됐다. 샤스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강력한 지지 기반이자 연정 파트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하레디 군 면제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졌다. 2000명이 넘는 하레디 남성들이 자발적으로 입대하기도 했지만 논란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 2월 이스라엘 국방부가 남성 기준 군 의무 복무 기간을 32개월에서 36개월로 늘리는 등 복무 기간 연장 방안을 제시하자 “하레디부터 군대 보내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네타냐후 정부가 대법원 결정대로 하레디 병역 면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예루살렘 등지에서 하레디 남성들의 반대 시위가 이어졌다. 대법원 결정에 따른 정부의 관련 법안 정비 시한은 이스라엘 은행의 연례 보고서가 나온 지난달 31일이었는데, 네타냐후는 시한을 30일 연장해달라고 대법원에 요청한 상태다.
◇이스라엘 중앙은행 “하레디, 경제와 재정 발목”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재정난이 악화된 가운데, 일하지 않고 군대도 가지 않는 하레디가 경제와 국가 재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이스라엘 은행은 지적했다. 이스라엘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수지 비율은 2022년 0.6% 흑자에서 지난해 4.2% 적자로 돌아섰다. 국방비 등 전쟁 지출은 늘어난 반면, 예비군 투입 등으로 경제 활동 인구가 줄면서 세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은행은 “이 추세(하레디의 군 면제)가 계속되면 이스라엘은 206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6%를 잃고 세금 부담은 급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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