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9월 23일~10월 8일) 폐막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수영과 양궁 등 전통적인 ‘효자 종목’에서 메달을 많이 땄지만, 13년 만에 아시안게임 종목으로 다시 채택된 바둑에서는 금메달 하나(남자 단체전)에 그쳐 약간의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남자단체전·여자단체전·혼성페어(남성 1명과 여성 1명 등 두 사람이 번갈아 바둑 돌을 놓는 방식) 등 금메달 세 개를 한국이 ‘싹쓸이’ 했었지요.
그런데 이번 아시안게임의 바둑 종목을 보면 좀 의아한 게 있습니다. 남자 개인은 있는데, 여자 개인이 없습니다. 세계 최강인 최정 9단이 있는 한국 입장에선 특히 더 아쉬운 부분입니다. 도대체 왜 항저우 아시안게임엔 여자 바둑 개인전이 없을까요. 근본적으로 바둑은 남녀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 종목일까요. 아시안게임 종목 구성의 ‘정치학’을 전문가 도움말을 들어 풀어보았습니다.
◇Q1. 아시안게임 바둑 종목, 어떻게 바뀌었나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땐 남자단체·여자단체·혼성페어전이 있었습니다. 2014 인천,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선 바둑이 정식 종목에서 제외됐습니다. 13년 만에 부활한 항저우 대회에선 남자단체·여자단체·남자개인전으로 종목이 구성됐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밑줄 친 부분이 변화입니다)
- 2010년: 남자단체-여자단체-혼성페어
- 2023년: 남자단체-여자단체-남자개인
아시안게임은 개최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편인데, 중국이 공식적으로 이유를 밝힌 적은 없습니다. 다만 지난 광저우 대회 당시 바둑 금메달을 싹쓸이 한 한국에 대한 견제의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정도입니다.
◇Q2. 왜 남자개인만 있고 여자개인은 없나
이번 아시안게임의 경우 개최국인 중국이 종목 선정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게임의 변화는 혼성페어가 빠지고 남자개인이 추가된 건데, 바둑 전문가들은 ‘혼성페어 삭제’ 쪽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 바둑 전문가의 말입니다. “현재 세계 바둑은 남자는 신진서, 여자는 최정 등 모두 한국 선수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둘이 혼성페어로 출전하면 한국이 금메달을 딸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큽니다. 중국으로선 빼고 싶었을 겁니다.”
혼성페어 경기 대신 출전 선수가 많은 남자개인을 추가했다는 해석입니다. 그렇다면 이왕 남자개인을 추가한 참에 여자개인을 더하면 안됐을까요? 메달 수를 하나 늘리면서요. 여기에 대해선 중국이 최정을 지나치게 견제해 종목을 없앴다는 설도 있습니다. 남치형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는 “여자 바둑에서는 최정 9단을 대적할 만한 선수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을 중국도 알 것”이라며 “금메달이 한국에게 갈 거라면 대회를 열지 말자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에선 같은 종목의 메달 수는 늘리거나 줄이지 않는 것이 좋다는 암묵적인 원칙에 따라 ‘메달 수 3개’를 유지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Q3. 종목 선정을 개최국 맘대로 하나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정관엔 “아시안게임의 공식 종목에는 육상 및 수영을 포함하여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가 승인한 모든 올림픽 종목이 포함될 수 있다. 종목에는 해당 지역의 조직위원회나 OCA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2개 스포츠와 5개 권역(동아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서아시아, 남아시아) 스포츠가 포함될 수 있다”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두루뭉술하지요.
아시안게임 종목은 OCA와 개최국 조직위원회 회의를 통해 개최 2년 전 확정됩니다. 전문가들은 올림픽과 비교할 때 아시안게임은 종목 결정에 있어서 개최국의 권한이 과도하게 강하다고 지적합니다. OCA의 ‘그립’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만큼 강하지 않은 탓입니다. 한 스포츠 전문가는 “아시안게임을 한국에서 한다면 윷놀이도 종목에 못 넣을 이유가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아시안게임 종목 선정의 허술함을 지적했습니다.
◇Q4. 애초부터 바둑에 굳이 남녀를 나눌 이유가 있나
야구나 축구 등 ‘몸’을 많이 쓰는 스포츠와 달리 바둑은 앉아서, 머리를 써서 두는 두뇌 스포츠입니다. 오죽하면 몸이 없는 인공지능(AI)까지도 바둑을 둡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 스포츠경기인 아시안게임 등에선 남녀를 나누지 않고 대국하는 게 적합하다는 의견이 때때로 나옵니다.
그렇다면 남자가 여자보다 바둑을 잘 둘까요. 선천적으로 그런지에 대해선 뇌의 구조 차이 등 여러 가설이 나오지만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없습니다. 현실적으론 남자 바둑 인구가 여성보다 훨씬 많고, 이 때문에 남자 바둑이 강세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프로 기사의 경우 어린 시절 입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직은 여자 아이보다 남자 아이에게 바둑돌을 쥐여주는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현재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 421명 가운데 여성은 81명에 불과합니다.
전문가들은 최근 여자 바둑 기사들이 늘어나 상황이 달라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합니다. 남치형 교수는 “2000년대 이후로 최정 9단처럼 실력 있는 여성 기사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남녀 통틀어 ‘최강’에 가장 근접하게 간 여성 기사로는 중국 루이나이웨이(1992년 남녀 합친 응씨배 4강)과 지난해 삼성화재배 결승까지 갔던 한국의 최정 선수가 꼽힙니다.
◇Q5. E스포츠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았던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E스포츠(게임)는 FC온라인·스트리트 파이터5·리그오브레전드(LOL)·배틀그라운드 모바일·왕자영요·몽삼국2·도타2 등 게임에서 남녀 선수들이 성별과 관계없이 동등하게 승부를 겨뤘습니다. 다만 전체 출전 선수 476명 가운데 여자 선수는 8명에 불과했습니다. 한국도 남자 선수만 15명 출전했습니다.
첨단 디지털 스포츠인 E스포츠 분야에선 오히려 남성우월주의와 남녀차별 문제가 자주 제기돼 왔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같은 문제가 논란이 됐습니다. 출전 선수 중에 여성이 지나치게 적다 보니, 차라리 E스포츠는 여성 종목을 따로 만드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배런’은 “아시아 프로게이머 중 여성의 비율은 37%이고 중국은 48%에 달하지만 아시안게임 출전 선수 중 여성의 비율은 지나치게 미미했다”며 “여성이 차별받아 ‘보이 클럽’이란 악명을 얻은 프로게임 세계의 실상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그대로 드러났다”고 해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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