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환호하는 ‘MAGA’ - 20일(현지 시각) 미국 아이오와주(州) 마쿼케타시에서 열린 당원 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통칭되는 트럼프 맹목 지지층은 트럼프 사건을 맡은 검사와 판사들을 위협하며 민주주의를 공격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달 5일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 타냐 처트칸 판사에게 “우리가 너를 보고 있으며, 만약 트럼프가 2024년에 당선되지 않으면 너를 죽이러 갈 것”이라는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검찰이 발신자인 텍사스 거주 여성 조 슈리(43)를 체포해 재판에 넘겼다. 처트칸 판사는 2020년 대선 결과 번복 모의 사건으로 기소된 트럼프의 형사 재판을 맡은 법관이다. 앞서 그는 2021년 1월 의사당 난입 사태를 일으킨 트럼프 지지자 38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했고, 그해 11월 의사당 난입 사태 전모가 담긴 백악관 문서를 의회 조사위원회가 볼 수 없도록 막아달라는 트럼프 측 요청을 기각했었다. 트럼프는 소셜미디어에서 처트칸 판사를 여러 차례 공개 비난했고, 지난 12일에는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아예 판사 기피 신청을 했다. 트럼프가 ‘마가(MAGA)’로 통칭되는 극성 지지층을 향해 사실상 특정 법관을 ‘좌표 찍기’했다는 지적이다. ‘마가’는 트럼프의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내걸었던 구호 ‘Make America Great Again(다시 미국을 위대하게)’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트럼프 대선 캠페인을 상징하는 단어다.

법무부는 처트칸 판사에 대한 긴급 경호 강화에 나섰다. 트럼프가 기소된 다른 사건인 성인물 배우 입막음(뉴욕 맨해튼법원), 백악관 기밀 문건 유출(워싱턴 연방지법), 조지아주 선거 결과 번복 시도(조지아주 풀턴카운티 법원)를 심리할 다른 법원들도 비상이 걸렸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검찰 수사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전후해 ‘개딸(열성 지지층)’들이 문자 폭탄 등 집단 행동으로 세를 과시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미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가 1년 2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마가’들의 행태가 미국 민주 정치의 심각한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 전·현직 대통령 중 처음으로 형사 기소돼 4개의 재판을 동시에 받으면서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치 생명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중대한 사법 리스크를 떠안았음에도, 트럼프는 ‘마가’들의 열성적인 지지에 힘입어 공화당 당내 경선 레이스에서 멀찍이 앞서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절대적 지지층들은 검찰이 그를 재판에 넘기자 검찰과 사법부에 대한 공격에 나서고 있다. 극우 보수 성향의 '마가(MAGA)'는 트럼프의 핵심 지지세력으로 꼽힌다. /AP 연합뉴스

‘마가’의 주축은 농업이나 공장 노동 등 육체 노동에 종사하는 저소득·저학력 백인층이다. 일하느라 목이 햇볕에 붉게 그을렸다는 의미로 ‘레드 넥(red neck)’이라는 비하적 표현으로 불렸던 이들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 경제 재편으로 주요 제조 시설이 외국으로 이전되고, 인종 다양성 중시 정책으로 소수 인종이 약진하면서 소외됐던 계층이지만, 2016년 대선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 우세 지역으로 분류되던 중서부 러스트 벨트(rust belt·제조업 쇠퇴 지역)에서 대거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기며, 트럼프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미국 사회 주류에서 소외되면서 누적된 불만이 ‘워싱턴 정치’ 경험이 없는 이단아 트럼프에 대한 열성적 지지로 표출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마가’는 보통 공화당원보다 더 보수적인 경향을 보이며 트럼프에게 헌신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트럼프는 재선에 실패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지만, 미 정치권에서 마가의 영향력은 오히려 더욱 확대됐다. 트럼프는 대선 이후에도 선거 결과가 사기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열성 지지층은 2021년 1월 의사당 난입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 트럼프는 네 차례 형사 재판에 기소됐지만, 그럴수록 ‘마가’들은 더욱 결집하는 양상이다. 이런 맹목적 지지는 트럼프 사건의 수사 검사나 재판 판사들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변질됐다.

지난달에는 트럼프가 자신이 패배한 조지아주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당시 주 총무장관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혐의와 관련해, 기소를 권고한 대배심원들의 이름과 주소 등이 온라인에 퍼졌다. 공포를 느낀 일부 배심원은 보복을 피해 이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1년 1월 의사당 난입 사건 선동 혐의로 트럼프를 기소한 잭 스미스 특별검사도 수사팀의 신변 보호를 위해 최대 1000만달러(약 133억원) 특별 예산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미 연방수사국(FBI)이 지난해 8월 ‘백악관 기밀 문서 유출’ 혐의와 관련해 영장을 발부받아 트럼프의 개인 별장인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를 압수 수색한 직후 수사관들의 신상 정보가 온라인에 퍼졌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에 대한 형사 소송이 가속화될수록 검찰이나 법원에 대한 위협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마가’의 집단행동이 노골화되면서 트럼프와 경쟁하는 다른 대선 주자들이 이들을 의식하는 모습도 연출되고 있다. 지난달 트럼프가 불참한 가운데 열린 공화당 대선 주자 첫 토론회에서 비벡 라마스와미 전 로이반트 사이언스 최고경영자는 토론회에서 “트럼프는 21세기 최고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마가’의 표심을 구애하는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재선에 도전하는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9일 뉴욕에서 열린 정치 자금 모금 행사에서 “내가 재선에 도전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라며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마가’ 공화당원들이 미국 민주주의를 파괴하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마가’를 싸잡아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예상대로 내년 대선이 바이든과 트럼프의 리턴 매치로 치러질 경우 미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갈등과 분열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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