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4일 미국 부통령이었던 마이크 펜스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펜스의 인사를 들은 트럼프는 재빨리 화제를 돌려 이렇게 지시했다. “1월 6일에 있을 (미 대선) 선거인단 투표 인증을 거부하시오.”
지난 1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한 혐의 등으로 기소한 연방 검찰의 공소장에 담긴 내용이다. 미 대선을 방해한 혐의로 트럼프가 기소된 가운데 펜스 전 부통령이 관련 재판의 향방을 가를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한때 트럼프의 복심으로 통한 펜스는 트럼프의 각종 비위를 정직하게 증언하며 트럼프의 ‘저격수’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소장에 따르면, 위의 통화에서 펜스가 “내가 결과를 바꿀 권한이 없다는 것을 알지 않느냐”며 거절하자 트럼프는 “당신은 지나치게 정직해(too honest)”라고 몰아세웠다. 모두 펜스의 증언에서 나온 내용이다.
트럼프를 기소한 연방 특검의 공소장엔 트럼프가 부통령인 펜스의 권한을 지렛대로 삼아 선거 결과를 어떻게 전복하려고 시도했는지가 자세히 적혀 있다. 펜스는 지난 4월 트럼프의 기소 여부를 결정할 연방 대배심에 출석해 증언했는데, ‘지나치게 정직한’ 그의 증언이 트럼프 기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은 전하고 있다. NYT는 2일 공소장을 분석해 “이번 기소를 통해 트럼프의 충성스러운 대리인이었던 펜스가 트럼프 재판 과정에 없어선 안 될 증인으로 변신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보도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트럼프는 펜스를 이용해 ‘민주당 조 바이든 승리’라는 대선 결과 확정을 막으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다. 그때마다 펜스는 단호히 거절했다. 이런 이유로 펜스는 ‘1·6 의회 난입 사태’ 당시 트럼프 지지자들의 주요 표적이 돼 곤욕을 치렀다. 의회에 난입한 지지자들은 교수대를 설치하고 “펜스를 목매달자”고 외치며 그를 찾아다녔다. 트럼프 또한 자신의 트위터에 “펜스가 바이든의 당선을 막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며 이들을 부추겼다. 당시 현장에 있던 펜스는 급히 지하 공간으로 대피해 화를 면했다.
연방 대배심이 기소를 결정한 후 펜스는 트럼프를 겨냥해 “헌법 위에 자신을 두는 사람은 결코 미국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에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트럼프 행정부의 일원이었던 펜스가 관객과 열광, 충성심 등 어느 것도 얻지 못해 안타깝다”는 조롱조의 글을 올리며 적나라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펜스는 지난 6월 공화당 대선 예비 후보로 나서며 내년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트럼프와 공화당 경선에서 붙을 예정이다. 지지율은 트럼프가 압도적으로 높지만, 함께 일한 전직 대통령과 부통령이 경선에서 경쟁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NYT는 이번 공화당 경선을 두고 “전 부통령이 한때의 러닝메이트였던 전 대통령과 맞붙는 역사적인 격돌”이라고 표현했다.
12년간 하원 의원을 한 뒤 인디애나 주지사를 거쳐 2020년 트럼프의 대선 캠프에 합류한 펜스는 독실한 기독교 복음주의자로 유명하다. 자신의 아내를 제외한 여성과는 둘이서 식사 등을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펜스 룰’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