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시가 미 10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현대차·기아 절도 놀이’와 관련해 현대차와 기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도난 방지 장치를 설치하지 않아 공적 피해를 일으켰다는 이유다.

현대차그룹이 보급하기로 한 도난 방지용 운전대 잠금장치. /유튜브

6일(현지 시각)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뉴욕시는 현대차와 기아가 도난당하기 쉬운 차량을 판매해 미국법상 공공 방해와 의무 태만을 저질렀다며 맨해튼에 있는 미 연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뉴욕시는 금액이 특정되지 않은 보상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소장에서 뉴욕시는 현대차와 기아가 2011∼2022년 차량 대부분에 도난 방지 장치인 ‘엔진 이모빌라이저(immobilizer)’를 설치하지 않은 점을 문제삼았다. 완성차 업체들 사이에서는 ‘거의 유일한(nearly unique)’ 경우라는 것이다.

뉴욕시는 이 때문에 “절도와 범죄 행각, 난폭운전, 공공 해악에 수문이 열렸다”고 주장했다. 엔진 이모빌라이저는 자동차 키 손잡이에 특수암호가 내장된 칩을 넣은 것으로, 암호와 동일한 코드를 가진 신호가 잡혀야만 시동이 걸린다. 이모빌라이저는 미국에서 필수로 장착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조사가 보안 강화를 위해 장착하는 추세다.

미국에서 현대차·기아가 절도의 표적이 된 것은 지난해 6월 위스콘신주 밀워키에 근거지를 둔 10대 차량 절도단이 기아차를 훔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다. 이들은 구형 기아차를 주로 훔쳐 ‘기아보이즈(kiaboys)’로 불린다. 이후 모방 범죄가 불과 두달 만에 미 전역으로 확산했다. 10대들은 범죄 장면을 틱톡, 유튜브 등 SNS에 생중계하면서 “오늘 기아 5대 획득”이라며 훔친 차를 경쟁적으로 자랑했다.

뉴욕시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 차량 도난 신고는 갑절로 늘었으며 올해 1∼4월에는 977건이 신고돼 지난해 같은 기간(148건)보다 급증했다. 그에 반해 BMW, 포드, 혼다, 벤츠, 닛산, 도요타 차량 도난 신고는 올해 들어 감소했다고 뉴욕시는 설명했다.

현대차는 성명에서 2021년 11월 모든 차량에 이모빌라이저를 표준화했으며 도난 위험을 줄이기 위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등 조처를 했다고 밝혔다. 기아차도 성명에서 도난을 방지하위한 노력을 언급하면서 뉴욕시의 소송에 대해 ‘실현 가능성이 없다(without merit)’고 했다.

앞서 올해 2월 현대차와 기아는 이모빌라이저가 없는 미국 차량 830만대에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 미국법인은 “원격으로 차량을 잠그면 시동이 걸리지 않게 업그레이드하겠다”며 “업그레이드가 안 되는 모델은 운전대에 거는 ‘도난 방지 자물쇠’ 구매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판매 차량에 도난 방지 기술을 넣지 않아 범죄 피해가 크게 늘었다며 현대차·기아에 소송을 낸 것은 뉴욕시가 처음이 아니다. 앞서 샌디에이고, 볼티모어, 클리블랜드, 밀워키, 시애틀 등도 같은 이유로 소송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