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시리아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1만7100명을 넘어선 가운데, 세계보건기구(WHO)는 강추위에 거리로 내몰린 생존자들이 물과 식량, 연료 등을 구하지 못한 채 전기와 통신까지 끊기면서 ‘2차 재난’ 위기에 놓였다고 경고했다. WHO는 이번 지진으로 약 23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로버트 홀든 WHO 지진 대응 책임자는 8일(현지 시각) “수색·구조 작업과 같은 속도로 지원에 나서지 않는다면 지진으로 인한 초기 희생자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2차 재난’을 맞을 수 있다”며 “많은 생존자가 지금 끔찍한 환경에서 야외에 머물고 있다. 이들이 생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라고 밝혔다.
AFP통신,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진앙에 가까운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에선 여진을 우려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생존자들이 영하 6도까지 떨어진 추위에 거리와 자동차에서 담요에 의지한 채 노숙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겨울 폭풍까지 몰아치는 상황이다.
상점이 모두 문을 닫고, 폭발 방지를 위해 가스 공급까지 중단돼 식량과 연료 등 필수품을 구하기도 어렵다. 대지진 여파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콜레라와 설사병 등 전염병과 호흡기 질환 등으로 보건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한 60대 남성은 “우리는 지진으로부터 살아남았지만, 배고픔과 추위 때문에 죽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진앙 근처인 튀르키예 카라만마라슈 지역과 피해가 가장 큰 남부 하타이주에선 건물 주차장이나 대형 경기장에 시신 수백구가 줄지어 놓여있는 참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시신 운반용 가방도 부족해 일부는 담요나 시트로 덮여 있었다. 친척의 시신을 찾기 위해 하타이주의 한 병원을 찾은 남성은 “병원 측에 가족을 찾을 방법을 물었더니 담요를 걷고 한 명씩 확인하라고 하더라”라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카라만마라슈의 축구 경기장이 거대한 이재민 대피소로 변했고, 체육관과 마을 소방서는 시신 안치소로 쓰이고 있다고 전했다. 시리아 알레포 인근 도시 아타리브의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네하드 압둘마지드씨는 NYT에 “지진이 발생한 지난 6일부터 우리 병원에서만 시신 148구를 거뒀다”면서 “내전 중에도 환자들을 치료했지만 내 평생 본 가장 참혹한 현장”이라고 했다.
구호 물자를 확보하더라도 수송 문제로 이재민에게 전달이 어렵다. 강진에 이어 수십 차례 발생한 여진으로 인해 주요 도로와 교량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연결하는 유일한 구호 통로이자 국경 통제소가 있는 바브 알하와는 주변 도로가 파괴돼 국제사회의 원조가 제때 미치지 못하고 있다. NYT는 “바브 알하와 국경 통제소에선 구호품 대신 가방과 담요에 싸인 시리아 난민들의 시신만 통과하고 있다”며 “그들은 내전을 피해 튀르키예로 갔다가 이번 지진 희생자가 됐다”고 전했다.
피해 지역으로 가는 길목인 튀르키예 남부 이스켄데룬 항구는 컨테이너가 우르르 넘어져 폭발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항구 운영을 전면 중단했다. 하늘길의 경우 구조·수색 요원을 태운 항공기 상황이 더 급해 구호물자를 실은 화물기가 다음 순위로 밀리고 있다.
생존자 구조에 결정적인 ‘골든 타임’(72시간)이 끝나가는 가운데, 기적적인 생환 소식도 전해졌다. 튀르키예 일간지 후리예트는 8일 카라만마라슈의 무너진 아파트에서 18개월 된 여아와 아이의 어머니가 지진 발생 56시간 만에 구조됐다고 보도했다. 임신한 상태의 어머니는 무너진 건물 아래에서도 딸에게 모유를 먹이며 버틴 것으로 전해졌다. 9일 오전에는 카라만마라슈의 붕괴한 아파트에서 5세 소녀와 부모가 지진 발생 73시간 만에 구조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