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2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 참석한 에바 카일리 유럽의회 부의장./로이터 연합뉴스

그리스 정치인이자 유럽의회 부의장인 에바 카일리가 월드컵 개최국 카타르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붙잡혔다.

11일(현지 시각) AFP,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벨기에 검찰은 자금 세탁 및 부패혐의로 카일리 부의장을 포함한 4명을 기소했다. 검찰은 성명을 통해 “유럽의회 결정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내부의 정치적 또는 전략적 위치에 있는 제삼자가 거액의 돈이나 상당한 양의 선물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9일 벨기에 경찰은 브뤼셀 내 약 16곳을 급습, 현금 60만유로(약 8억2600만 원)를 발견했다. 이후 관련자 6명을 체포한 뒤 조사를 이어왔다. 체포된 이들 중 한 명은 카일리 부의장의 정치 파트너로, 카일리 부의장이 소속된 유럽의회 사회당그룹(S&D)의 보좌관으로 알려졌다. 또 루카 비센티니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 사무총장도 체포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번에 기소된 인물들의 신원을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AFP통신은 한 사법 소식통을 인용해 카일리 부의장이 기소된 4명 중 1명이라고 전했다. 카일리 부의장은 그리스의 메가TV 앵커 출신으로, 2014년부터 유럽의회에서 부의장직을 수행했다. 그는 카타르에서 불거진 이주 노동자 인권 침해 등 각종 논란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언행을 이어왔다. 월드컵 개막 직전인 지난달에는 알빈 사미크 알마리 카타르 노동부 장관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에바 카일리 유럽의회 부의장. /로이터 연합뉴스

카일리 부의장은 최근 카타르 국영 QNA통신이 공개한 영상에서 “이번 월드컵이 아랍의 정치적 변화와 개혁에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며 “유럽의회는 카타르의 노동 개혁 진전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존중한다”고 했다. 유럽의회 연설에서는 “일부 유럽의회 의원들이 카타르를 괴롭힌다”며 각종 부패 논란이 불거진 카타르를 두둔하고 나섰다.

기소 소식이 알려지자 유럽의회는 카일리의 부의장 권한을 정지했다. 사회당그룹 역시 즉각 그의 당원 자격을 정지했다. 카일리 부의장의 자국 정당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도 그를 제명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유럽의회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부패 스캔들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탈리아 총리를 지낸 파올로 젠틸로니 유럽연합(EU) 재무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이탈리아 공영방송 RAI에 출연해 “최근 몇 년 새 가장 심각한 부패 사건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이번 일로 유럽의회의 평판이 심각히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카타르 정부 대변인은 이날 이메일 성명을 통해 “(이번 수사와 관련해) 우리는 세부 사항을 알지 못한다”며 “카타르 정부를 위법 행위와 연관시키려는 어떠한 시도도 단호히 거부한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