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 수낙 영국 총리가 28일(현지 시각) “영국과 중국 간의 ‘황금 시대(Golden age)’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수낙 총리는 이날 런던 길드홀에서 열린 연례 ‘런던금융시장 만찬’ 연설에서 “무역을 통해 (중국의) 정치·사회적 개혁을 유도할 수 있다는 (과거의) 생각은 순진했다”며 그같이 말했다. 일간 가디언은 “수낙 총리가 자신의 첫 주요 외교·안보 관련 연설을 점증하는 (중국) 시진핑 정권 권위주의에 대한 경고에 할애했다”고 말했다. ‘런던금융시장 만찬’은 임기 1년인 런던 금융 중심지(City of London) 시장 선출을 계기로 매년 열리는 행사로 총리 등 주요 인사들이 연설을 한다.
수낙 총리는 이날 작심한 듯 중국 비판에 날을 세웠다. 그는 “중국은 지금 모든 국가 권력을 이용해 전 세계적으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며 “중국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이익에 체계적인 도전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권위주의가 강화되면서 이런 도전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했다. 수낙 총리는 전날 BBC 기자가 중국의 시위를 취재하던 도중 공안에 붙잡혀 여러 시간 구타당한 일을 거론하기도 했다.
수낙 총리의 이날 발언으로 최근 격화되고 있는 영국과 중국 간 갈등이 더욱 첨예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양국 관계가 일시적 마찰이나 감정 다툼이 아니라 가치와 시스템을 둘러싼 근원적 격돌이고, 중국에 자유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않고는 양측 마찰이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국 관계는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순항했다. 영국 BBC는 “‘황금 시대’라는 표현은 (지난 2015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시절 양국 간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뜻하는 표현”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 10여 년간 영국의 대중 경제 의존도는 크게 높아졌다. 중국은 수입액 기준 영국의 최대 무역국이고, 영국의 대중 수출은 신종 코로나 사태 직전인 2019년 기준 359억파운드(약 57조원)에 달했다. 중국은 또 영국의 ‘힝클리포인트C’와 ‘시즈웰C’ 원전 건설에 참여하는 등 영국의 사회 기반 시설 투자에도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2020년 중국의 홍콩 ‘국가 보안법’ 강행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보리스 존슨 내각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고) 2025년 이전에 대만을 국가로 인정할 수도 있다”며 반발했다. 또 외국인 투자법을 강화해 중국의 영국 기업 인수에 제동을 걸고, 중국의 신장 위구르 인권침해에 대한 유럽연합(EU) 등의 대중 제재에 동참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중국은 영국의 경제적 안보에 대한 최대 위협”이라며 “영국의 번영과 가치에 ‘구조적인 도전’이 됐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지난달 16일 맨체스터 주재 중국 영사관 직원들이 시 주석 비판 시위를 하는 홍콩인 남성을 구타한 사건이 벌어진 이후 일반 여론도 반중(反中)으로 돌아서고 있다.
영국 정부는 수낙 총리의 연설 직후 ‘시즈웰C’ 원전 프로젝트에서 중국 국영 기업을 빼기로 했다. 로이터 통신은 “영국 정부가 7억파운드(약 1조1191억원)를 투자해 중국핵전집단공사(CGN)가 보유한 지분을 사들이고 지분 50%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편, 캐나다도 지난 27일 중국을 “세계 질서를 파괴하는 국가”로 규정하는 ‘인도·태평양 전략 문서(CIPS)’를 발표했다. 캐나다 정부는 이 문서에서 “중국은 (서방이 만든) 기존 규범과 질서를 통해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지만, 이제는 그 규범과 질서를 무시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은 (타국과) 의견 차이가 있는 사안에서 (경제·군사적 우위를 이용해) 강압적 행위를 하고 있으며, 인권을 무시하고 있다”며 “중국이 캐나다와 캐나다의 파트너 국가에 대한 안보를 침해하는 경우 중국에 맞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캐나다와 중국은 지난 2015년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자유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2018년 미국 요청으로 중국 화웨이 창업자인 런정페이의 큰딸 멍완저우 부회장을 억류해 가택연금하고, 중국이 보복으로 캐나다인 두 명을 수감하면서 급격히 관계가 악화했다. 지난 16일 주요 20국(G20) 행사에선 시 주석이 트뤼도 총리에게 “우리 대화 내용이 언론에 나왔다”며 따지는 모습이 공개되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캐나다는 최근 캐나다 리튬 생산 업체에 투자한 중국 기업 3곳에 투자 철회 명령을 하는 등 중국의 캐나다 투자를 견제하고 지식재산권 침해를 막기 위한 법률 제정에도 나섰다.
유럽도 중국에 대해 점점 더 강경한 입장으로 바뀌고 있다. EU는 최근 중국의 인권 탄압과 대만 침공 위협, 경제적 침탈 등을 경고하며 “중국을 ‘전면적 경쟁자’로 규정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또 독일은 중국의 함부르크 항만 투자를 항만 경영에 개입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제한하고, 독일 반도체 기업 인수를 불허하는 조치를 했다. 유럽 내에서 가장 친중적 국가로 꼽혔던 스위스도 최근 중국의 신장 위구르 인권침해에 반발해 대중 제재를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