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 신임 영국 총리로부터 내각 4대 요직으로 꼽히는 장관 등에 임명된 4명이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를 나서고 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장관, 제임스 클리버리 외무장관, 쿼지 콰텡 재무장관, 테리즈 코피 부총리 및 보건장관. 역대 세 번째 여성 총리인 트러스의 내각은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총리와 외무, 내무, 재무장관 등 4대 요직에 백인 남성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연합

보리스 존슨 총리의 뒤를 이어 6일(현지 시각) 공식 취임한 리즈 트러스(47) 신임 영국 총리가 부총리와 재무·외무·내무장관 등 이른바 4대 요직에 모두 흑인과 여성을 임명했다. BBC는 “국가의 중책을 맡은 이들 4자리(great offices of state)에 백인 남성이 없는 것은 사상 처음”이라고 전했다.

트러스 총리는 이날 오후 총 30명의 장관과 부장관급 내각 인선을 발표했다. 그는 자신과 보조를 맞춰 내각을 이끌어갈 부총리 겸 보건복지장관에 최측근인 테리즈 코피(51) 전 노동·연금장관을 임명했다. 그는 2010년 트러스 총리와 함께 하원에 입성, 보수당 내에서 줄곧 함께 활동해 왔고, 이번 당수 선거에서 트러스의 선거 캠페인을 총지휘했다. 재무장관에는 존슨 총리 내각에서 산업장관이던 쿼지 콰텡을 발탁, 정부 재정이 대거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에너지 가격 급등 대책을 주도하게 했다. 자신의 뒤를 이를 외무장관에는 제임스 클리버리 전 교육장관을, 내무장관에는 당수 선거에서 맞붙었던 수엘라 브레이버먼 법무장관을 임명했다. 브레이버먼은 선거 초반 탈락한 뒤 바로 트러스 총리 지지를 선언했던 인물이다.

더타임스와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트러스 총리가 주요 직책에 자신의 측근과 지지자를 집중 배치했다”며 “특히 보수당 핵심 지지층인 백인 남성의 퇴조가 눈에 띈다”고 분석했다. 4명의 핵심 장관 중 부총리 겸 보건장관과 내무장관 등 절반이 여성이다. 또 콰텡 재무장관은 부모가 가나 출신이고, 클리버리는 어머니가 시에라리온 출신이다. 브레이버먼은 아버지는 케냐, 어머니는 모리셔스 출신이다. 이민자 가정 출신의 비(非)백인이 3명으로, 보수당 주류로 평가되는 백인 남성은 한 명도 끼지 못했다. 다만 이날 임명된 30명 중 백인 남성이 절반(15명)을 차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을 이끌어갈 국방장관에는 벤 월러스 장관이 유임됐다.

트러스 총리는 이날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한 취임 연설에서 “우리 앞에 닥친 폭풍우를 함께 헤치고 나가 멋진 영국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감세와 개혁으로 영국 경제를 성장시켜 안전하고 기회가 넘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특히 에너지와 국민보건서비스(NHS) 문제 해결을 강조하며 “에너지 요금과 공급 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를 이번 주에 마련하고, NHS의 기반을 다져 누구나 쉽게 진료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동맹들과 함께 세계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킬 것”이라고도 했다.

한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국가 간의) 서로 다른 입장을 고려 않고 비타협적 태도로 영국의 국익을 지키려 하는 인물”이라며 “국제무대에서 영국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또 “트러스 총리는 (우크라이나 문제에 개입하기 전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친구인지 적인지부터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러스 총리가 당수 후보 시절 인터뷰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영국의 친구인가 적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딱 잘라 말하기 힘들지만, 내가 총리가 되면 그의 말이 아닌 행동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답한 것을 비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