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80만명에 불과한 소국(小國)이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위력(威力)에도 위엄을 잃지 않는 리투아니아가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대만과의 관계 개선을 문제 삼는 중국의 보복에 맞대응한 데 이어, 이번엔 러시아의 노골적인 위협에도 유럽연합(EU)의 대러 제재 원칙을 철저히 적용, 러시아 영토로 가는 화물열차를 제한해 버렸다. 눈앞의 이득에 휘둘려 오락가락하기보다 일관된 입장과 전략으로 존재감을 확실히 하는 ‘약소국 정치’의 모델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 외무부는 20일(현지 시각) “모스크바 주재 리투아니아 대사 대리를 불러 칼리닌그라드와 러시아 본토 사이 화물 운송에 대한 리투아니아 정부 조치에 강력 항의했다”고 밝혔다. 리투아니아가 18일부터 칼리닌그라드행(行) 기차 화물에 EU의 대러 금수조치를 적용한 데 따른 것이다. 이로 인해 첨단 제품과 건설 자재, 시멘트, 철강, 석탄, 금속 등을 실은 화물열차는 칼리닌그라드에 전혀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칼리닌그라드는 발트해에 면한 러시아의 역외 영토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 둘러싸여 있다. 발트해를 통한 바닷길 혹은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를 지나는 육로로만 러시아 본토와 연결된다.

안톤 알리카노프 칼리닌그라드 주지사는 “칼리닌그라드가 수입하는 물품의 약 50%가 (리투아니아에 의해) 막힌 상황”이라고 밝혔다. 사실상의 ‘봉쇄’ 조치인 셈이다. 이곳은 러시아 발트함대의 본거지이자, 런던과 베를린, 파리를 수분내로 타격 가능한 핵미사일이 배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급해진 러시아는 “본토에서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화물은 수출품이 아니다”며 “중단된 화물 운송이 빨리 복원되지 않으면, 우리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리투아니아에 대한 외교·경제적 제재는 물론, 군사적 수단 동원도 서슴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리투아니아는 이런 ‘협박’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다. 리투아니아 외무부는 이날 “EU 회원국으로서 제재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뿐”이란 반응을 내놨다.

리투아니아는 지난해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압박에 당당하게 맞섰다. 리투아니아와 대만이 지난해 11월 각각 양국 수도에 대사관 격의 ‘대표처’를 설치하자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한, 터무니없는 행위”라며 “앞으로 벌어질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리투아니아의 몫”이라고 보복을 예고했다. 리투아니아가 이에 반응을 보이지 않자, 중국은 주리투아니아 대사를 본국 송환하고, 리투아니아 주재 중국 공관을 대표처로 격하하면서 외교 관계를 사실상 단절했다. 또 양국 간 기술 교류와 협력을 중단하고, 리투아니아산 공산품과 농산물은 물론 리투아니아산 부품을 사용한 제품 수입까지 금지하는 경제 보복까지 하고 나섰다.

리투아니아는 물러서기는커녕 동일한 보복 조치로 맞대응했다. 주중 리투아니아 대사관을 문 닫게 하고, 중국 기업이 대주주인 스페인 건설업체의 자국 내 교량 건설 계약을 전격 취소했다. 자국 국민들에게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이 해킹의 위협이 있다며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또 중국의 경제 보복을 당한 자국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1억3000만유로(약 1770억원) 규모의 대출 펀드를 조성하고, EU를 통해 중국의 경제 보복을 불공정 무역 행위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등 빈틈없는 대처를 했다.

강대국에 굴종(屈從)하지 않는 리투아니아의 정책은 상당 부분 역사적 경험을 통해 형성됐다. 소국이지만, 14세기부터 러시아와 폴란드, 독일, 스웨덴 등 주변 강국과 끊임없는 충돌과 대립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과 독립 의식이 분명한 국가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18~19세기 러시아 제국의 압제, 2차 대전 중 20만명에 이르는 유대인 학살, 소련 합병 과정에서의 정치적 탄압을 겪으며 “작은 굴욕을 참으면 더 큰 굴욕을 겪게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다. “리투아니아가 EU의 일원이라는 것도 일관되고 당당한 대외 관계를 할 수 있는 힘”이라며 “러시아와 중국 입장에서 EU와 정면 대결을 무릅쓰고 리투아니아에 대한 과감한 보복에 나서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