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오종찬 기자

‘철혈재상’으로 알려진 독일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898),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1874~1965), 미국의 외교 사령탑이었던 헨리 키신저(99) 전 국무장관…. 격동기 강력한 국력을 절대선으로 여기며 국익을 추구한 정치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본지와 만난 원로 정치학자 강성학(74)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이들은 평화는 강력한 힘을 이룩할 때에만 올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줬다”며 “새 정부도 이를 염두에 두고 대북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근현대 서구 정치가들의 리더십을 집중 연구해온 그는 최근 500페이지 분량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천재·정치가의 불멸의 위대한 리더십’을 출간했다.

일반인들에게는 독일의 기틀을 세운 인물 정도로 알려져 있는 비스마르크의 리더십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한국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를 짚는다. “불평등한 자는 평등을 원하고, 평등한 자는 헤게모니를 원한다” “바보는 자기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배운다”는 어록, 빌헬름 2세와의 불화 끝에 물러나면서 “내가 심혈을 기울여 평화를 유지해온 발칸반도에 재앙이 올 것”이라고 날린 경고가 1차 세계대전으로 현실화하는 장면 속에 깃든 탁월한 안목을 짚어낸다.

비스마르크를 지금 한국이 주목해야 하는 까닭에 대해 그는 “남북 분열 상황에서 한반도 통일 정책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북통일을 평화적으로 이룩할 수 있다는 생각은 헛된 꿈”이라며 “북한이 멸망해서 자발적으로 흡수통일을 원하지 않을 바에야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정권의 통일·안보정책에 ‘평화’라는 단어가 공공연하게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큰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했다. “근대 주권국가가 탄생한 이후 지도자들은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해왔다. 전쟁까지 불사했다는 뜻이다. 그럼 평화는 무엇인가? 국가 이익이 조화를 이룰 때 주어지는 산물이다.”

그는 “국가가 평화를 추구한다고 공표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전쟁보다 평화가 낫다는 주장을 펴는 나라를 다른 국가는 존경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남북 관계는 민족 관계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동일 민족으로 구성된 두 국가 관계”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공산주의자와의 협상을 ‘악어 먹이 주기’에 빗댄 처칠의 혜안을 염두에 두라고도 조언했다. 악어에게 줄 먹이가 떨어지면 결국 악어가 자신을 잡아먹으러 달려들 듯, 유화책은 자멸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33년간 모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2014년 퇴임한 그는 최근 연구·집필 활동이 더욱 왕성해졌다. 앞서 조지 워싱턴(2020년 8월), 해리 트루먼(2021년 8월), 헨리 키신저(올해 1월)의 리더십에 대한 책을 출간했고, 오는 8월에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편을 내놓을 예정이다. 그는 “코로나로 활동이 봉쇄되면서 중세 작가 보카치오처럼 집필에만 몰두하게 됐다”며 “코로나가 일종의 위장 축복처럼 됐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