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점에서 1500㎞ 떨어진 노르웨이 북쪽 끝 스발바르 제도에는 핵전쟁 등 극한 상황에 대비해 지구촌 각지의 식물 씨앗을 보관하는 ‘스발바르 국제 종자 보관소’가 있다. 인류의 대재앙 상황을 가정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현대판 노아의 방주’ ‘지구 최후의 날 식량 저장고’라고도 불린다. 이곳의 설립과 운영을 주도해온 미국 농업학자 케리 파울러(73) 박사는 ‘저장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미 국무부는 지난 5일(현지 시각) 세계 식량 안전 특사에 파울러 박사를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국무부는 식량 공급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지난해 11월 식량안전담당 조직을 신설하고, 빈곤국 식량난 타개 등을 골자로 하는 6년짜리 식량 원조 계획도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가 폭등하고 곡물 등 식자재난이 벌어지면서 파울러 박사를 특사로 임명했다.

이는 미국이 식량 공급 문제를 선진국의 대외원조 차원이 아닌 국내외를 아우르는 중대한 안보 문제로 인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기후변화와 코로나, 그리고 러시아의 무자비한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곡물 공급난 등으로 지구촌이 전례 없는 식량 불안을 겪는 상황에서 파울러 박사가 역할을 맞게 됐다”고 말했다.

파울러 박사는 1990년부터 유엔 세계식량기구에서 일했다. 당시 기상이변과 잦은 전쟁이 끊이지 않으면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종자보관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제기됐다. 그는 식물학자, 식량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 그룹을 이끌며 종자보관소 입지 선정 및 건립 작업 등을 총괄했다. 2008년 국제종자보관소가 들어선 스발바르섬은 핵전쟁과 기후위기 등으로부터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울러 박사는 종자 보관소를 운영하는 국제단체인 크롭트러스트의 운영 책임자를 2012년까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