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의 ‘중대 고비’로 꼽혀온 9일 러시아의 2차 대전 전승기념일을 앞두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공방(攻防)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러시아가 이날 우크라이나에 대한 설익은 ‘승전 선언’을 하거나, 반대로 전면전 선포를 할 가능성 때문이다. 양측 모두 기선(機先)을 잡아 상대의 사기를 미리 꺾으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지난 7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자주포로 러시아군에 포격을 가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을 모두 장악하기 위한 공세를 강화했고, 우크라이나는 흑해 해상과 북동부 하르키우 지역에서의 반격으로 러시아군에 크게 타격을 입혔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7일(현지 시각) “러시아군이 오데사에 공대지 순항 미사일 6발을 발사해 군 시설과 항만 등이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오데사는 남부 흑해 연안 서쪽 끝에 위치한 최대 항구 도시다. 러시아가 이곳을 손에 넣으면 돈바스에서 몰도바에 이르는 흑해 해안 지역을 사실상 모두 차지해 우크라이나의 바닷길을 모두 막게 된다.

러시아는 하르키우에도 대규모 미사일 폭격을 벌였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하르키우에 서방이 공급한 대량의 무기가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이스칸데르 미사일 등을 이용해 보급 기지와 기차역, 철도를 공격했다”고 밝혔다. AP통신과 로이터 등 외신은 “러시아가 총 44개 우크라이나군 지휘소와 196개 거점에 미사일과 포탄 공격을 했다고 주장했다”며 “9일 전승기념일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막바지 공세에 주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軍, 우크라 여성들 성폭행 말라”… 폴란드 러 영사관 앞 시위 - 8일(현지 시각) 폴란드 크라쿠프에 있는 러시아 총영사관 앞에서 우크라이나 지지 시위를 벌이는 여성들이 속옷 차림으로 줄지어 서서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성폭력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앞서 우크라이나 키이우 북쪽 소도시 부차 등에서 나온 민간인 시신을 부검하고 있는 법의학자 블라디슬라프 페로브스키는 “여성들이 총에 맞아 숨지기 전 성폭행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하루에 약 15구의 시체를 부검하고 있고, 상당수가 훼손된 상태”라고 밝혔다. 류드밀라 데니소바 우크라이나 의회 인권감독관도 지난달 말 “부차의 한 지하실에 감금돼 조직적으로 성폭행당한 25명의 사례를 당국이 공식 기록했다”며 “러시아군은 성폭행을 전쟁 도구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러시아군은 민간 지역도 계속 타격하고 있다. 하르키우 시 의회는 이날 “러시아 미사일이 유서 깊은 하르키우 박물관을 파괴했다”며 페이스북을 통해 박물관이 불타는 모습을 공개했다. 오데사 시 당국도 “(군 시설이 아닌) 도심에 러시아군 미사일이 떨어졌으며, 사상자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오데사와 하르키우의 유서 깊은 거리와 문화유산이 러시아군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며 “지금까지 200개 이상의 역사 유적과 문화유산이 러시아군에 의해 파괴됐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대대적 반격에 나섰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흑해의 해상 요충지인 즈미니섬(뱀섬) 인근에서 ‘바이락타르 TB2′ 무인기(드론)로 러시아 해군의 세르나급 상륙정 1척을 타격해 격침했다”고 주장했다. 세르나급은 최대 92명이 탑승 가능한 소형 상륙정으로, 러시아군이 최근 마리우폴과 오데사에 대한 강습 상륙 작전을 위해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군은 또 러시아군이 점령한 즈미니섬도 집중 공격했다. CNN과 AP통신은 “위성 사진 분석 결과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섬의 건물 대부분이 파괴된 것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하르키우에서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공세에 밀려 퇴각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국 전쟁연구소를 인용해 “우크라이나군이 하르키우를 포위하고 있던 러시아군을 야포 사정권(약 30~40㎞) 밖으로 몰아내고 있다”며 “하르키우에 (군수품 및 민간 물자) 보급이 용이해지면서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군이 장악한 ‘남부 벨트’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는 양측의 격렬한 포격전으로 사상자가 급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들은 “돈바스 지역에 투입된 러시아 제64 근위여단이 우크라이나군의 집중 포격을 받아 약 300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며 “사실상 괴멸 상태”라고 보도했다. 키이우 인근 부차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진 부대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도 “(돈바스 공방이 시작된 이후) 우크라이나군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며 “사상자에 대한 언급을 꺼려온 우크라이나군이 처음으로 이를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또 전선에서 약 11㎞ 떨어진 루한스크 빌로호리우카의 학교 건물이 러시아군 폭격을 맞아 이곳에 대피한 민간인 90명 중 60여 명이 매몰됐다. 우크라이나 측은 “사망자 2명이 확인됐고, 나머지 약 60명도 생사가 불명확하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달 15일 “전사자 약 3000명, 부상자 1만명”이라는 발표 이후 자국군 피해 집계를 밝히지 않고 있다. WP는 “전쟁이 만 2개월을 넘어가면서 러시아군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군에도 상당한 ‘전투 피로감’이 쌓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영국 국방부는 “(전쟁 장기화로) 러시아군의 최정예 부대 상당수가 심각한 손실을 입은 것으로 분석된다”며 “전쟁이 끝나도 손실 복구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